[브릿지 칼럼] 노후건강, 그 상식의 사회경제학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7-02-22 16:30 수정일 2017-02-22 17:31 발행일 2017-02-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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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갈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얻는 즐거운 기회다. 이번엔 여느 때와 달리 완벽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이동거리를 생각하면 다소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결론은 좋았다. 한국이 좇아갈 장수사회의 단면을 속속들이 챙겨보는 생생한 생활관찰이 가능했다. 대중교통과 노인생활의 상관관계가 대표적이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버스 내부의 불편 및 갈등지점이 적잖았다.

출퇴근이 아닌 시간의 버스승객 절대다수는 고령인구다. 10명 가운데 8~9명은 한눈에 봐도 환갑을 훌쩍 넘긴 고령사회 최대비중의 인구집단에 속하는 이들이다. 일본 버스가 승·하차에 굉장한 시간과 확인을 들이는 이유다. 급정거·급출발은 십중팔구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굼뜰 정도로 일일이 룸미러로 착석여부를 확인한 후 출발하는 게 기본이다. 민폐를 싫어하고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한 배경도 있지만 사고방지를 위한 실리차원의 정책 이유도 크다.

문제는 자리다. 고령승객이 워낙 많으니 한정된 자리로는 그들을 모두 앉히기 어렵다. 불가피하게 서서 가야 한다. 자리양보가 없다는 일본에서조차 자연스레 경로사상이 발현될 만큼 노구(老軀)승객이 많으니 당연지사다. 그래도 설 수밖에 없는 고령인구는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만일 수밖에 없다. 승객이 꽉 차는 만원구간에는 장수사회를 겪지 않은 낯선 이방객의 까닭 모를 염려만이 몰려들 따름이다.

핵심은 건강이다. 장수사회의 버스공간에서 버텨내는 관건은 반동을 이기는 직립능력과 악력이다. 이게 부족하면 지옥경험이 따로 없다. 버스를 이용할 정도면 그나마 보행권과 교통권을 두루 손에 쥔 경우다. 나이가 들수록 교통권은 커녕 보행권조차 상실당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렇게 되면 외출은 포기해야 한다. 집안에 머물며 행동반경을 최소화한다. 당연히 더 외롭고 아파진다.

노인 외출은 자연스럽다. 몸이 허락하는 한 문밖 출입은 필수다. 그게 노인 소외를 막는 지름길이다. 그러려면 늙어갈수록 건강해야 한다. 최대한 무병기간을 늘리는 게 좋다. 무병장수가 어렵다면 질환을 최소화하는 일병(一病)장수라도 실현하는 게 맞다. 그래야 스스로 움직이고 불편하나마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있다. 움직이니 질환을 늦추는 기대효과도 크다. 예외는 거의 없다. 금전능력이 탁월한 부자노인이면 몰라도 중산층 이하라면 신체건강은 노후행복의 절대조건일 수밖에 없다.

일본여행에서 느낀 걸 한마디로 정리하면 고령인구에 대한 경로사상의 상실이다. 워낙 고령자가 많아 일일이 챙겨줄 수 없을뿐더러 기대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다. 자칫하면 경로석이 어린이 전용자리로 바뀔 만큼 인구구조가 뒤틀린 탓이다. 유교적 노인존중이 건재한 한국에선 상상조차 못할 일이 장수대국 일본에선 평범한 일상풍경인 것이다.

노후건강은 장수사회의 필수조건이다. 가진 게 없다면 더더욱 놓쳐서는 안 될 최후의 생활방어막이 노후건강이다. 다행인 건 재무준비보다는 건강관리는 평소에 조금만 신경 쓰면 가능하다는 점이다. 노후자금은 더 쟁여두기보다 덜 소비하는 게 효과적이다. 이런 점에서 장수사회 경제원론의 핵심뼈대는 재무를 넘어서 노후건강의 모색일 수밖에 없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