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양치기 소년이 된 정치인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17-02-15 14:24 수정일 2017-02-15 14:24 발행일 2017-02-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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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정치인들을 싣고 가던 버스가 도로를 벗어나 농장의 커다란 나무에 부딪혔다. 근처에 사는 늙은 농부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 큰 웅덩이를 파고는 부상당한 정치가들을 모두 묻어버렸다. 며칠 뒤 부서진 버스를 발견한 경찰이 농부에게 물었다. “타고 있던 정치가들은 모두 어디 있습니까?”

“다 묻어버렸죠.”

“생존자가 한명도 없었단 말입니까?”

“몇몇 사람들은 자기가 죽지 않았다고 말을 했습니다만….”

“그런데도 땅에 묻었단 말입니까?”

“하지만…” 말끝을 흐리던 농부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정치인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하는지는 당신도 잘 알잖아요?”

일반적으로 신뢰는 일방의 선언이나 계약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상호 간의 자발적 감정 유발에 의해 형성되는 교감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신뢰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형성되기 어려우며 한번 손상되면 회복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위 이야기는 국민들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반증하고 있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귀국한 지 단 20일 만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 배경은 정치인들에 대한 환멸감과 인격살인, 음해 등 자신의 명예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실질적 배경은 국민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그 신뢰를 다시 얻기 어렵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루 아침에 뱀에 물리면 10년을 새끼줄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듯 한번 깨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 신뢰를 깨지 않는 것이 좋은 신뢰를 형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함을 시사한다.

유년시절 한번 정도 읽었을 법한 ‘양치기 소년’ 우화를 떠올려보자. 양을 치는 소년이 심심풀이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고 소란을 일으킨다. 어른들은 소년의 거짓말에 속아 하던 일을 멈추고 무기를 들지만 헛수고로 끝난다. 그 뒤로도 소년은 반복해서 거짓말을 했고 정작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어른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고 아무도 도우러 가지 않았다. 결국 마을의 모든 양들은 늑대의 희생양이 되어 버렸다.

양치기 소년의 우화는 한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신뢰의 상실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엄청난 불신과 희생을 안겨다 준다. 1997년 한국은 IMF 경제위기에 봉착하기 전에는 다른 나라에 대한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 중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경제가 외국에 개방되자 나라 간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을 신뢰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금리와 환율이 치솟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나라 경제가 파멸의 위기에 놓였었다.

결국 한국 사람들은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다른 나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방경제에서 신뢰가 매우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수많은 양치기 소년이 득실거린다. 그리고 그들은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걸한다. 진정 당신은 늑대인가? 사람인가?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