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트럼프 시대의 패러독스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17-02-16 18:22 수정일 2017-02-16 18:22 발행일 2017-02-0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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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미국 증시에서 흔히 신임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동안 주가가 일시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허니문 효과’라고 부른다. 2008년 11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선 됐을 때는 의료 서비스 개선 및 확충의 기대감으로 인해 제약, 바이오 관련주들이 일시적으로 상승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직후 ‘트럼프 허니문’ 효과는 없었다. 뉴욕증시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 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트럼프 취임 직후 장중 22%까지 급등하며 5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트럼프 허니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이어졌던 트럼프식 광폭 행보가 원인일 수 있다. 트럼프는 공식 취임 직후 일주일 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설치를 지시했다. 아울러 무슬림 7개 국가 국민의 비자 발급과 입국을 막는 파격적인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향후에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교역대상국과의 무역마찰이 예상되며 미국의 보호무역정책에 대한 경계감으로 인하여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트럼프의 선거전략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신흥국의 부상과 글로벌화로 인해 위축된 미국 산업을 다시 부흥시켜, 미국 내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트럼프의 지지기반이었던 러스트벨트(rust belt) 유권자들에게 일자리로 보답하고자 하는 취지는 어쩌면 선거판에서 흔히 사용되는 전략 중 하나일 수 있다.

2001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도 당선 직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러시아, 중국, 일본, 남미 등 철강 수출국들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취했다. 수입 철강에 대한 최대 30%의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쇠락한 미국내 러스트벨트 지역의 철강산업을 부흥시키려는 선거공약을 이행시켰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미국 내 철강가격의 폭등을 일으켰고 철강을 소재로 하는 미국의 자동차산업, 조선산업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옛말에 벼룩 하나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보호무역정책의 부작용과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한 부시 행정부는 수입철강에 대한 보호무역 조치를 바로 폐기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적 패러독스는 향후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추진하는 ‘약한 달러’ 정책은 현재 트럼프가 동시에 추진하는 경기부양 정책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만약 트럼프의 공약대로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진행한다면 이는 가파른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며 이어지는 금리 상승으로 인하여 약한 달러보다는 오히려 강한 달러로 전환 될 것이다.

강한 달러는 곧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수출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더 많은 미국 기업들이 저임금을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이전하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트럼프의 의도와는 달리 그가 추진하는 보호무역 정책은 오히려 미국 산업의 공동화(空洞化)를 가속시키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

트럼프 정책의 또 다른 패러독스는 외교정책과 이민정책에서도 예상된다. 트럼프가 지향하는 ‘위대한 미국’의 기반은 바로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미국 중심의 세계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도맡았었고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우수인재 양성을 통해 지난 100여년 간 국력을 키워왔다. 최근 미국의 TPP 탈퇴가 중국이 주도하는 ’팍스 시니카 (Pax Sinica)‘ 시대를 앞당기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과 함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역설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종언이 아니겠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쩌면 트럼프 시대의 도래는 미국에게 지난 70여년 간 ’강대국‘이라는 타이틀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으로 다가왔기에 가능한 결과였을 것이다.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또한 하루 아침에 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트럼프 시대와 함께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왕관을 내려 놓을지, 아니면 ’대국굴기‘라는 모토(motto) 아래 몸을 풀고 있는 중국이 ’팍스 시니카‘ 시대를 열게 될지, 향후 글로벌 정세의 귀추가 주목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