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패션산업, 꽃길만 걷게 해준다더니…전안법 개악 논란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7-02-08 15:27 수정일 2017-02-08 15:27 발행일 2017-02-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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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새해 벽두부터 법안 하나가 우리나라 패션산업을 질식시키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통과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일명 ‘전안법’이 영세한 규모의 신진 패션디자이너를 비롯한 수많은 소상공인의 여린 가슴에 못질을 해대고 있다. ‘전안법’은 전기용품뿐 아니라 신체에 직접 접촉하는 패션의류 등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자에게도 KC 인증마크를 획득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패션 종사자들에게 제품판매를 위한 인증 관련 비용과 절차상 지체라는 부담까지 중과시킨 셈이다. 이에 폐업도 심각히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전안법’은 탁상행정의 폐해이자 민생악법으로 지목받고 있다.

‘전안법’은 KC인증을 받지 않았거나 KC인증표시를 하지 않은 전기용품·생활용품은 제조·수입·판매·구매대행·판매중개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해 올해 1월 28일 시행을 공표했었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의류·잡화 등 품목의 KC 인증서 게시 및 보관의무를 1년간 유예했다. 하지만 단순한 유예조치만으로 패션산업이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는 없다. 하루라도 빨리 전안법에 대한 재논의를 통해 진정한 민생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전안법’이 야기한 비용폭탄부터 따져보자. 통상적으로 한 가지 소재에 대한 시험분석 비용은 10만원, 열 조각 짜리 옷은 100만원이나 소요되는 셈이다. 대부분 영세한 패션디자이너는 손익분기점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위기를 맞게 된다.

‘전안법’으로 인한 패션산업의 시름은 비단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저가패션의 메카 동대문에서는 샘플을 먼저 제작해 바이어의 승인 후 제작에 들어가 하루이틀 내로 제품을 판매 루트에 올려놓는 신속성이 생명이다. 그런데 ‘전안법’상 의무를 준수하려면 대상 제품들을 시험분석을 보내고 라벨을 맞추어야 하는 등 열흘이 속절없이 흘러가버린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속해야 하는 특성과 신속성을 바탕으로 한 동대문 특유의 경쟁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전안법’의 개정 취지는 분명 국민의 신체 안전을 더 철저히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규제와 부당한 부담 전가는 서민의 경제력을 저하시키고 종국에는 국가경제 전체를 좀먹게 된다. 국가와 제조사가 책임져야 할 안전문제를 판매자에게 떠넘기는 ‘전안법’은 꽃길만 걷게 해줘도 시원치않을 패션디자이너 소상공인들을 흙길로 내모는 형국이다. 시행이 1년 유예됐지만 패션산업 일선에서는 이미 벌금 등 행정적 단속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KC인증이 없으면 온라인 쇼핑몰 제품 등록 자체가 거부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이고도 어마어마한 부담이 되는 법안을 개정하면서 패션디자이너 등 해당법률의 수범 대상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사실은 허술한 입법절차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뒤늦게나마 야당을 중심으로 각종 간담회 및 TF 결성 등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각 정당의 후속 연구 및 개정 작업으로 유예기간 내에 ‘전안법’ 대상, 인증등급, 생활용품의 범위 등에 대한 세밀한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나아가 새로운 정책과 법률, 규칙 등을 도입할 때는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해당 규정이 이해당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면서 정책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야 한다. 꽃길만 걷게 해주려면 열악한 패션산업의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소상공인 우선 원칙(Think Small First Principle)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