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아노미의 충돌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연구본부장
입력일 2017-02-02 13:16 수정일 2017-02-02 16:21 발행일 2017-02-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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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완 총괄본부장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연구본부장

국제정치학계의 석학 조지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100년 후’에서 미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세계 초강대국이 놀랄 만큼 새로운 힘과 비이성적 감성 변화를 보이는 사춘기의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중략) 미국은 지금 젊은 문화 단계에 있기 때문에 서툴고 직설적인데다 때론 야만성을 띤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일련의 정책에는 조지 프리드먼이 말하는 ‘사춘기적 야만성’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취임한 지 겨우 열흘 만에 온 세상을 다 뒤집어 놨다. 제일 먼저 보호 무역이라는 경제 장벽을 세웠고, 두 번째로 멕시코 국경 장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거기까지만 해도 세계는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쳐다보는 정도였다. 문제는 인종과 이민에 관한 세 번째 장벽이 촉발했다. 인종과 이민으로 만들어진 나라가 미국인데. 미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적통성을 부정해버린 결과가 되었다.

지금까지 나온 세 개의 장벽을 보면 인종주의, 국수주의 그리고 (시장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엘리트에 의한 지배와 같은 면모가 엿보인다. 과거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서 익히 보았던 모습이고,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근까지도 애써 타파하려고 했던 그 모습이다. 미국 국민들은 아노미 상태다. 미국을 이루는 뼈대와 근간이라고 믿었던 가치들이 불과 몇 일만에 신임 대통령에 의해 모두 부정(deny)되고 있다.

신년 벽두부터 한국 경제가 위기상황에 빠졌다. 세계 경제는 그런대로 최악의 침체 국면을 지나서 회복 국면으로 들어가는 마당인데. 유독 우리나라만 또 다시 위기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의 아노미만 해도 우리나라로서는 견뎌내기가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군사적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이 기존 질서를 흔들면 당연히 우리와 미국 간의 연결에 문제가 생긴다. 직접적 이해 관계 뿐만이 아니다. 북한이나 일본과의 관계에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중간 마찰이 불러올 2차적 파장까지 고려하면 아마도 우리나라가 트럼프 정책의 가장 큰 피해국이 될 것이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야만적’ 행보는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트럼프의 장벽은 세 개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제4, 제5의 장벽이 계속 세워질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아노미가 내응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가 불러온 혼돈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특검과 헌재에서, 정치권에서 그리고 촛불과 반(anti) 촛불이 수개월째 대치하고 있는 광장에서 최고 출력의 메가톤급 권력 공백과 아노미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국가 최고 권력의 아노미 아닌가.

2017년. 이제 겨우 한 달 살았는데, 벌써 일 년을 다 살아낸 기분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아노미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책임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모두에게 있다. 3부가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위기 국면에 적기 대처하는 한편 권력의 아노미 상태도 어떤 결과가 되었든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한다. 미국은 기존 질서를 부수는 대통령이 있는 아노미이지만, 우리는 그에 대응할 대통령이 없는 아노미라는 점에서 우리가 더 심각한 문제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