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아름다운 동행 ‘힐러리와 텐징’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7-02-01 10:58 수정일 2017-02-01 11:12 발행일 2017-02-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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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가연(佳緣), 말 그대로 아름다운 인연이다. 하지만 평생 누군가와 가연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한 때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남이 되고, 은혜를 입은 사람과 원수가 되는 게 세상사다. 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동시에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그의 세르파였던 텐징 노르가이의 아름다운 동행을 가끔씩 떠올리며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 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이곳은 인간의 발길을 결코 허락하지 않아, 수많은 산악인들이 정상을 오르려다 이름 없는 별로 사라져갔다. 산업혁명 후 제국주의로 힘을 키운 서구 열강들은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를 오르느냐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등이 대규모 원정대를 꾸며 에베레스트로 보냈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히 무려 일곱 차례나 원정대를 보냈지만 정상 정복에 실패한 영국은 8차 원정대를 보낸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대관식 전에 에베레스트를 밟아야 한다, 그 주인공은 영국인이어야 한다는 특명아래. 1953년 4월 26일 영국인만으로 짜여진 1차 등반대가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정상 인근까지 진격했으나, 거친 눈보라로 실패하고 만다. 그 뒤 5월 29일 2차로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뉴질랜드 목동 출신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 출신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정상 공략에 나선다. 새벽 6시 30분 산소통을 메고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이들은 정상으로 향하는 동안 곳곳에서 지옥의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높고 깊은 틈)를 만나기도 했지만 고비를 잘 극복하고, 오전 9시 경에 해발 8760m의 남봉까지 오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정상까지에는 거의 직벽에 가까운 15m의 빙벽이 있어 난코스 중의 난코스로 꼽힌다. 힐러리와 텐징은 이 구간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투 끝에 통과했는데 훗날 사람들은 이 구간을 ‘힐러리 루트’로 이름 붙여주었다. 힐러리가 이 루트를 개척하면서 체력의 상당부분을 소모해 텐징이 앞장서서 정상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오전 11시 30분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내용의 무전을 베이스캠프로 날려 보낸다. 인류 최초로 8848m의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순간이다. 언론에는 힐러리가 찍어 준, 영국 국기를 들고 있는 텐징의 사진이 대서특필됐다. 하산 후 언론은 이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함께 한 인터뷰 때마다 “누가 먼저 정상에 발을 디뎠느냐”며 집요하게 질문을 쏟아냈다.

힐러리는 그 때마다 “우리는 서로 도우며 함께 올랐다”며 결코 자신의 공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사실 힐러리는 정상을 밟고 하산하던 중 크레바스에 추락해 거의 죽을 뻔했다. 텐징이 줄을 끌어올려 그의 목숨을 구해준데 대한 보답이기도 했다. 텐징 또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만약 정상에 한 발 늦게 도착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면 나는 그런 부끄러움을 안고 살겠다”고 말하며, 힐러리가 먼저였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6년 텐징이 숨을 거둔 뒤에야 힐러리는 “그가 마지막 몇 걸음 앞에 두고 내게 영광을 양보했다”면서 그러니 “둘이 함께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에베레스트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힐러리였지만 사실 에베레스트 정상에 먼저 도달한 사람은 텐징이었다고. 체력이 많이 소모된 힐러리는 텐징에게 먼저 정상에 올라 기다리라고 손짓했지만 텐징은 바로 정상 앞에서 힐러리를 기다린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의 영광을 차지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파트너를 기다렸고,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첫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의 공로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힐러리는 1958년 남극 횡단에도 성공했으며, 그 후 네팔에서 학교와 병원을 짓는데 여생을 보냈다. 네팔인들에게 전설적인 영웅으로 기억된 텐징 또한 영국의 조지 십자훈장과 네팔의 타라 훈장 등을 받고, 죽기까지 히말라야 등반 지도자로 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이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