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속도위반

최규연 순천향대학교 산부인과 교수
입력일 2017-01-25 16:07 수정일 2017-01-28 16:40 발행일 2017-01-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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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 순천향대학교 산부인과 의사
최규연 순천향대학교 산부인과 교수

얼마 전 여러 장의 속도위반 과태료 고지서를 받아보고 남편한테 한참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시내에서 100㎞로 달리다니 제정신이냐, 그러다가 사고 나겠다. 운전 좀 천천히 하지”. 걱정 반, 핀잔 반 설교가 이어졌다.

“도대체 내가 언제 속도위반을 했지? 그럴 리가 없는데….”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키며 운전한다고 자부하던 터에 세장의 속도위반 과태료에 적힌 과속 내용과 과태료를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지서의 사진에 찍힌 차번호는 내 차번호가 틀림 없었다. 과속 시간과 장소를 확인해 보니 세장 모두 새벽 시간대였고, 장소는 병원과 집 출퇴근 경로였다. 새벽 1시, 2시, 5시 경이었다. 최근 거의 매일 병원에서 콜 받고 분만과 수술을 했던 기억이 나면서 자다가 깨서 급하게 나간 기억이 났다.

어제도 새벽에 텅 빈 시내를 달리면서 잠깐 멍한 사이 과속을 하고 있기에 얼른 정신을 차린다. 만약 사고가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본다. 나를 기다리는 산모에게도 미안하지만 본능적으로 나 자신에게 가장 큰 해가 된다는 생각에 얼른 시속 60㎞에 맞춘다.

문제는 집에 도착해서다. 예전에는 한밤중에 불려나갔다 와도 취침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콜 받고 병원에 갔다 오면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 자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면서 뒤척이다가 먼동이 트는 것을 보고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산업안전보건법령에 따르면 야간 근로자는 특수건강검진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야간근로자의 대상은 6개월간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의 계속되는 작업을 월 평균 4회 이상 수행하는 경우다. 여러 연구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야간근로는 사망률을 높이고, 종양 발생으로 인한 사망률도 2.8배 증가시킨다.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근무가 질병을 일으키는 기전은 다양하지만 생체리듬의 불일치와 사회적 시간적 패턴 파괴 및 행동변화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나는 야간근로자는 아니지만 업무 특성 상 한번 병원에 나가면 최소 1시간, 길게 3~4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야간 근로자와 별 차이가 없다.

야간 당직은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이틀에 한번이든 사흘에 한번이든 당직은 말 그대로 24시간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상태다. 24시간 켜진 핸드폰은 언제든지 주변에 있어야 한다. 병원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놓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지방이나 외부 출장 중이어도 내가 외래에서 진찰한 산모의 분만을 당직과 상관없이 하게 되면 말 그대로 매일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끔은 푸념섞인 불평을 하게 된다. 새벽 골든타임에는 분만을 받지 않아도 되는 법이라고 있으면 하고 말이다. 물론 당직 전공의 선생님이 받을 수도 있지만 오랜 습관처럼 되어버린 원칙에 따라 내가 외래에서 보던 산모의 분만은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라면 내가 꼭 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피곤함보다 우선이 되어 버린다.

오늘도 퇴근하면서 전공의들에게 부탁을 한다. 오늘밤은 부르지 말고 모두 잘 자자고! 혹시라도 산모가 있더라도 분만 시간 급하지 않게, 속도위반하지 않게 여유 있게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하고 퇴근한다.

최규연 순천향대학교 산부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