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불효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7-01-22 14:55 수정일 2017-01-22 14:56 발행일 2017-01-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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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제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생, 700만명)의 대량은퇴가 2020년 이후 본격화된다. 정년연장(65세)의 수혜도 2020년이면 끝난다. 그 다음은 고령근로·황혼갈등·빈곤노인·간병공포 등 팍팍하고 암울한 문제가 기다린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불로장생을 즐길 여유가 없다. 장수는 고단한 삶의 연장일 뿐이다.

고령불행은 현대사회의 제도적 병폐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일할 체력과 의지만 있다면 은퇴란 없었다. 은퇴해도 노후생활은 가족이 해결해줬다. 은퇴이후의 역할도 있었다. 대가족체제의 어른답게 상당한 권리·역할을 행사했다. 그러나 현대화와 산업화, 도시화가 이 시스템을 무너뜨렸다. ‘고령=잉여’로 전락하며 연령차별이 본격화됐다. 은퇴집단을 살펴줬던 상호의존적인 보호망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고령불행을 저지할 유일한 안전지대는 국가의 복지시스템 외에는 남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복지시스템은 빈틈이 꽤 크다. 형식적으로는 공적보험, 사회서비스, 공적부조 등 3대 복지제도를 다 갖췄지만 수급조건과 대상, 금액 등 여러 면에서 상당히 성글어 노구를 의탁하긴 힘들다.

통계를 봐도 노후소득원의 유력 루트는 근로소득(월급)과 사적이전(용돈)으로 귀결된다. 결국 월급과 용돈을 빼면 한국노인의 은퇴생활은 불가능해진다. 노후 소득의 40~70%를 담당하는 공적연금에 10~30%를 보충해주는 기업연금까지 있어 ‘노후생활=연금소득’인 서구선진국에 비해 굉장히 초라하다. 서구사회의 용돈비중은 1% 이하인 반면 한국은 93%가 용돈 의존적(2005년 노인실태조사)이다. 결국 ‘효도의지’가 강력한 믿음직한 자녀가 없다면 노후빈곤은 피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하지만 자녀들의 미래도 이미 충분히 날카로운 가시밭길이다. ‘인플레→디플레’의 시대변화는 자녀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도와주고 싶지만 도와주기 힘든 복합불황 앞에 좌절은 일상적이다.

그래서 장수시대는 불효사회다. 불효를 강권한다. 맥락에 대한 분석 없는 일방적 효행 강조는 부모·자녀 모두를 힘들게 한다. 제 살 길도 막막한데 부모노후마저 챙겨달라고 요구하긴 힘들다. 자녀세대는 출발선부터 지쳐 나가떨어진다. 연애·결혼·출산을 연기·포기하는 청년세대의 등장은 자녀세대 스스로 선택한 최후의 생존카드일지 모른다. 삶이 팍팍하니 꿈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본능조차 거스르며 축소·고립적인 삶을 걷는다. 이들에게 부모봉양을 강요할 수는 없다.

부모마음도 그렇다. 내리사랑의 본능을 보건대 노후봉양을 요구할 부모는 많지않다. 거꾸로 빈곤핍박의 고통을 알기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자녀에게 물려주고픈 게 인지상정이다. 지난 대선 때 50대가 집단적 보수경향을 보인 것도 실은 최후의 자산인 부동산을 지키려는 의지였을 터다. 이것마저 놓치면 본인은 물론 자녀미래도 힘들다는 점을 동물적으로 체감한 결과다. 용돈의존은 지금까지는 몰라도 앞으로는 안 통한다. 노후안전망으로서 자녀보험은 사라졌다. 힘들지만 하산비용은 스스로 마련하는 게 좋다. 이제라도 스스로 노후소득원을 다양화하는 데 나서거나, 그도 아니면 복지시스템 구축에 적극적인 정당과 정치인에게 투표라도 하자.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