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쉰들러 리스트, 버킷 리스트 그리고 블랙리스트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7-01-15 15:26 수정일 2017-01-15 15:27 발행일 2017-01-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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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자, 여기 3개의 리스트가 있다. 우선 ‘쉰들러 리스트’.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 휴먼 드라마 영화의 제목이다. 리암 니슨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유태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하여 작성한 9개의 명단을 의미한다. 나치의 폭정 치하에서 홀로코스트 만행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유태인들이 독일인의 은밀하고 위대한 용기 덕분에 드라마틱하게 구원될 수 있었던 감동적 실화 ‘쉰들러 리스트’는 이듬해 아카데미, 골든글로브상을 휩쓸었다.

평생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 혹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적은 목록을 뜻하는 ‘버킷리스트’는 어떤가. ‘죽다’라는 뜻의 영어 속어 ‘Kick the Bucket’에서 유래된 버킷리스트는 2007년 영화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The Bucket List)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영화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명의 노인 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함께 떠난 세계여행에서 각자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가족과 주변 소소한 일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재발견한다.

마지막으로 무시무시한 리스트가 있으니 이름하여 블랙리스트다. 현 정권에 대하여 비판적인 일부 예술인에 대한 국가 지원을 배제하는 명단이다.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문화예술의 지원은 편파적일 수밖에 없었다. 보수파가 득세한 정권이든 진보주의가 의기양양하던 시절이든 지원대상은 넘쳐나고 지원자금은 한정되었기 때문에 꼭 블랙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에 의해 그 누군가는 음지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만 했다. 비단 이번 정부만의 폐해가 아니다. 문화예술이 답이라고 목소리를 높여가는 문화국가의 시대에 오히려 문화의 다양성이 부인되고 21세기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과거보다 더 억압받는 역행의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결국 그 어느 정권이든 다양성의 존중과 다른 입장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흑역사는 반복된다.

3개의 리스트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앞의 2개 리스트는 역경에서 자유를 지켜 주거나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는 생명의 리스트라면 블랙리스트는 예술적 영혼을 흔들고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리스트다. 쉰들러·버킷 리스트가 존중, 평등, 자유, 그리고 환희를 상징한다면 문화체육관광부의 리스트는 독선, 불공정, 멍에, 그리고 분노로 점철돼 있다. 스필버그와 잭 니콜슨의 리스트는 단 한번만에 모든 청중을 감동시켰지만 주무부처 전·현직 장관들조차 모른다는 모종의 리스트는 청문회에서 국회의원의 18번에 걸친 추궁과 팩트폭력 끝에야 겨우 그 존재가 인정됐다. 스필버그의 리스트가 약자의 처지도 인정하고 배려하는 인류애와 평등을, 잭 니콜슨의 리스트가 소외된 황혼 인생들에게도 희망의 빛을 던져주고 있는 반면, 아직도 그 출처가 모호한 블랙리스트는 절대강자의 오만, 편견, 독선과 함께 국가의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예술인들에게 좌절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우리 앞에는 위 3개의 리스트들이 항상 놓여있다. 우리는 어떠한 리스트를 피하며 살아야 할까? 또한 어떤 리스트를 위해 죽어야 할까?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