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선진경제로 도약 위한 첫째 조건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7-01-11 11:45 수정일 2017-01-11 12:43 발행일 2017-01-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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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ONG Moon)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신경제로 표방됐던 창조경제라는 거대 담론이 우리 주위를 4년에 걸쳐 맴돌더니 이제는 허공 속으로 모습을 서서히 감추고 있다. 소기 성과가 없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정치권부패 악취를 풍기는 폐기대상물 신세에 놓였다. 그 용어에 대해 정부는 이스라엘 식 혹은 아일랜드 식이라는 수식어를 상습적으로 붙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나 아일랜드는 물론 유럽 전역을 훑어봐도 그런 경제모델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창조경제란용어 자체는 한국정부가 만든 신조어로서, 그의 정체는 지난 4년간의 정부의 창조경제 관련 정책을 통해 헤아려 볼 수밖에 없다. 정부 행보를 종합하면 창조경제란 융합형을 시도하는 경제실험을 의미한다. 그 증거는 정부 스스로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를 창조경제의 사례로 든 데서 찾을 수 있다. 한류음악에다 유투브 기술을 융합한 ‘창조적’ 실험이 국부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것처럼 소개했다. 문화 쪽에서도 한류문화를 융합 시도하는 사업이 벌어졌으며 그것이 문화융성이란 말로 둔갑됐다. 창조경제 관련 성과를 조기에 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창조경제추진단’이 설립됐고, 그를 통해 기획된 창조경제 관련 사업 대부분이 정치스캔들로 비화됐다는 사실 역시 청문회를 통해 밝혀졌다.

여러 방면에서 융합이 시도됐으나, 오늘 현재 실체도 없는 허구적 모형을 놓고 실제로 해외에는 존재하는 것인 양 포장한 것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이스라엘도 그렇지만 필자가 몸담고 있는 아일랜드에서 경기가 최근 들어 호황 국면으로 접어든 데에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 아일랜드가 과거 목축업과 관광업을 기본으로 경제가 버텨왔으나 그간 지지부진했던 해외기업 투자유치 부문이 괄목할 만한 급증세를 보이면서 최근 GDP 6만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구글, 애플 등 세계 굴지 IT기업은 물론 바이오 공학 등 제 분야의 첨단기업들이 유럽 본사를 더블린 인근에 설립한 것이다.

투자를 유인한 원동력은 세제, 기후, 정치수준 등 셋이다. 특히 정치 신뢰도는 선진 외국 기업의 결단을 이끌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불안정한 주식 종목에 많은 투자가가 몰릴 리는 만무하듯이 정권이 불안정한 나라에 첨단분야의 세계적 기업들이 투자할 리도 만무한 것이다. 첨단분야 기업 유치는 의미가 크다. 현지인력 채용규모가 클뿐더러 그들로부터 선진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어 기술을 지국 내에 뿌리내리게 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부가세가 12% 선을 넘지 않는 점, 항온항습 장치를 별도로 요하지 않는 연중 일교차 적은 날씨, 인구 대비 국토 면적 풍족인 점도일조하기는 했다. 첨단 분야 장비들이 고전력을 소모하는 관계로 에너지 절감요인이 중요한 탓이다.

그러나 이런 보조요인들이 정치수준 요인만큼 비중이 컸던 것은 아니었다. 아일랜드는 의회민주주의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세계 몇 안 되는 나라다. 정치계 윤리성의 기준은 엄격하다. 윤리 일탈행위와 위증은 국민들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벌써 퇴출 당했어야 할 인물들이 청문회에 증인으로 대거 등장하는 한국과는 다르다. 한국도 이스라엘이나 아일랜드처럼 글로벌 기업의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일 없이는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한 나라다. 이런 정치 수준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중차대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문송천(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아일랜드국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