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2017년의 대한민국, ‘그릿’에서 해답을 찾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입력일 2016-12-29 13:00 수정일 2016-12-29 13:00 발행일 2016-12-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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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식 교수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다사다난했던 2016년도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초에 계획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와 함께 다가오는 새해를 맞아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되는 천사만감(千思萬感)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시인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은 ‘세월이란 것은 오지 않는 내일이며 가고 없는 어제’라고 정의하면서 지나간 시간, 다가올 미래를 놓고 번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주었다.

베스트셀러 ‘그릿(Grit)’에서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심리학과 엔젤라 더크워스 교수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지속적인 꾸준함’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심리학적 용어로 이를 ‘그릿’이라고 명했다. 가장 적합한 우리말 단어로는 ‘끈기’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계에서도 생소한 ‘그릿’이란 개념을 측정하려 더크워스 교수는 입학과 졸업이 동시에 어렵다는 미국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표본으로 해 무사히 졸업한 생도들의 심리적 특성을 장시간 측정했다. 그 결과, 그릿을 가진 개인은 크게 재능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뛰어난 이들이 아니었다. 현재 주어진 상황을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꾸준함을 갖고 있었다. 이 때 무턱대고 목표를 향해 달려드는 무모함이 아닌, 목표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요구된다. 위기 상황에서 극복할 수 있는 능력, 역경을 낙관적으로 풀어낼 역량이 바로 그릿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릿이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가 갖는 보편적인 문화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더크워스 교수는 북유럽의 강소국가인 핀란드를 그릿이 잘 배양되어 있는 나라로 선정했다. 핀란드는 인구 500만의 작은 국가로 열악한 기후와 자원환경, 강대국에게 지속적으로 침략과 지배를 당한 역사 속에서도 그들만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왔다. 핀란드어 ‘시수(sisu)’라는 단어는 영어의 그릿과도 같은 뜻인데, 오랜 시간 핀란드인들의 정신세계에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역경속에서도 국민소득 3만 7000달러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핀란드는 그릿 문화의 상징적인 국가로 선정될 자격조건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핀란드도 국민기업인 노키아의 몰락으로 지난 5년간 경제위기를 겪었다. 성장률은 5년째 마이너스가 지속되고, 이어진 경제위기에 2015년 5월에 기업가 출신인 유하 시필레(Juha Sipila) 총리가 취임해 핀란드 경제의 회복을 위해 대대적인 경제 구조조정을 펼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핀란드와 우리나라의 유사성이다. 핀란드는 800여 년 동안 스웨덴, 러시아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자원이 부족해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중심의 경제구조이며 한 때 노키아라는 글로벌 기업이 전체 수출 물량의 20%를 차지한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였다. 우리에겐 국민기업 삼성이 아직 건재하지만, 어쩌면 몰락한 핀란드의 현재는 대한민국이 원치 않는 미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핀란드의 ‘그릿’은 현재진행형이다. 노키아를 대신해서 모바일게임의 효시 앵그리버드를 만든 로비오, 인기 모바일게임 클래시오브클랜을 만든 수퍼셀과 같은 스타트업이 지난 5년 사이 400여 개 넘게 창업되었다. 정부는 떼케스(Tekes)라는 국립기술혁신투자청을 신설해 핀란드를 벤처기업육성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2016년 끝자락,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도 우리는 정치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고 이런 혼란과 불확실성은 2017년에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새해에도 우리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결코 ‘포맷’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크워스 교수가 정의한 ‘그릿’, 핀란드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시수’는 결코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우리에겐 지난 5000년 동안 우리 민족을 이끌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끈기’라는 문화가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이기에 ‘그릿’이란 생소한 단어를 주입시켜서라도 2016년 위축된 대한민국을 각성시킬 필요가 있다.

다가오는 2017년 대한민국에게 묻는다. 과연 우리에겐 ‘그릿’이 있는가? 그리고 이런 대답을 원한다. 이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이 자리에서 그냥 멈춰 있지 않을 거라고.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