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신해철법 도입의 맹점

윤상철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외과 교수
입력일 2016-12-25 15:35 수정일 2016-12-25 15:37 발행일 2016-12-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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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외과 교수

응급실에서 호출이 왔다. 급작스러운 복부 통증으로 내원한 환자였고, 즉시 복부 컴퓨터 영상을 촬영해 보니 복부 대동맥류 후방이 파열돼 출혈이 시작된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복부 대동맥류가 파열되면 수술을 해도 사망률이 50%에 육박해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마침 수술실도 비어 있고 마취과 당직의와 외과 당직 전공의도 다른 수술이 없어 준비가 돼 있었다. 동의서만 받으면 수술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보호자측에서 환자가 다니던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한 것이다. 환자는 심장혈관 질환과 복부 대동맥류가 있어 수술을 염두에 두고 타 병원에서 추적 관찰 중이었다.

한시가 급한데 환자와 보호자들의 동의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우선 그 병원에 수술이 가능한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해당 교수가 학회에 참석해 서울에 없고, 다른 교수들은 일정이 있어 수술이 곤란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사이 환자는 출혈이 계속돼 혈액 수치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보호자측에 그쪽 병원 사정과 환자 상태를 설명했다. 상황을 이해한 보호자는 수술에 동의했고, 즉시 수술을 이뤄졌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며, 환자는 별다른 합병증 없이 완쾌돼 퇴원했다.

그러나 현실의 의료사항은 만만치 않고, 이 환자처럼 모든 환자가 사망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응급수술은 말 그대로 급한 정황에 대처하는 수술이기에 정규수술보다 합병 또는 사망 위험성이 높다. 내가 담당한 환자가 중대한 합병이 발생하면 환자 측에서도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의사는 모든 질병과 모든 합병증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기에 “질병은 하늘이 고치고 의사는 그 과정을 도울 뿐이다”라는 명언도 있으나, 알파고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요즘 일반 국민들에게 이 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신해철법이 지난 11월 30일 시행됐다. 법의 내용은 환자의 사망, 1급 장애, 한 달 이상 중환자실 입원 시 원인과 관계없이 보호자가 신청하면 의료강제조정이 시작되고, 의사는 이에 응하지 않으면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지불한다. 설사 무과실일지라도 배상액의 30%를 지불해야 한다.

환자측에서는 의료과실의 입증이 어려워 취약한 환자측의 의료분쟁 해결을 돕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이 법으로 의료진은 의료조정을 피하고자 소극적인 진료를 조장하게 될 수도 있다는 맹점도 있다. 병원에서 외과 계열 전공의 지원 기피, 전공의 주 80시간 근무규정으로 인력난을 겪는데다 의료분쟁으로 강제조정과정까지 들어가면 업무장애가 발생하기에 차라리 배상액의 일부를 보상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

모든 수술과 시술은 병원 내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환자입장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에게 수술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고, 합병증이 전무한 수술도 없다. 이같이 합병증 발생에 대한 책임이 가중돼 가는 의료체계에서 젊은 의사들이 중환자를 피하기 위한 눈치를 먼저 배울까 우려된다. 앞으로 국민건강을 지켜나갈 젊은 의사들이 중환자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신적, 물리적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

윤상철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