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CEO의 공인정신

이해익 경영컨설턴트
입력일 2016-12-22 16:24 수정일 2016-12-22 16:25 발행일 2016-12-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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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익 경영컨설턴트

요즘 ‘재벌총수 청문회’를 보면서 국민들은 분노와 실망을 느꼈을 게다. 나라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막중한 거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그 분들이다.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 “송구하다.”, “앞으로 잘 하겠다.” 이런 식의 답변으로 장시간 청문회의 문답에 응한 재벌총수들에게 ‘공인정신’을 다시금 주문하고 싶다. 물론 사기업의 CEO가 공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그 사회의 많은 인력과 자원을 동원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거대기업의 CEO는 의도했든 아니든 공인정신을 가져야 한다.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경영이란 경제적 성과달성을 위한 관리적 기능과 그 성과에 대한 책임인 사회적 기능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Social Accountability)이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기업 경영의 핵심인사인 CEO는 공인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CEO는 그 기업만의 지도자가 아니다.

말에는 시대적 철학이 담겨 있다. 장돌뱅이, 장사치, 장사꾼, 상인, 기업가, 사장, 최고경영자, CEO. 돌이켜보면 CEO란 단어 뒤에는 이런 무수한 역사적 흔적이 담겨있다.

그런데 요즘 말을 사용하는 데 오염현상이 많은 것 같다. 생각을 전하는 귀중한 언어로써 아름답고 소중하게 간직하려 들지 않는다. ‘사랑’이란 말도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말인가! 영화 속에서처럼 ‘사랑’ 타령도 너무 하다 보니 싸구려가 됐다. 새파란 연예인들 사이에 쩍하면 ‘공인’ 운운해대는 것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면 아무리 지명도가 높아 많은 사람들의 선망이 되고 또 영향을 주더라도 연예인은 인기인이지 공인이 아니다. 연예인을 가볍게 보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연예인이 공인과 같은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사생활과 연예활동을 건전하게 하겠다는 의지에 대해 시비하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인기인은 밤하늘의 반짝이는 스타 일뿐이다. 귀족작위까지 받은 로렌스 올리비에도 위대한 연극인이지 공인이라 하지 않았다. 따라서 잭 웰치와 마이클 잭슨은 다르다. 존 F 케네디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다르다.

바로 비윤리적인, 비도덕적인 또는 불법적인 방법이 아닌 건전한 기업경영을 통해 주주와 투자가 그리고 채권자를 섬기는 마음이 우선이다. 또 고객을 섬기고 종업원과 협력회사를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마땅히 세금을 내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기여할 바를 찾아 일익을 담당하여야 한다.

CEO란 공인의 자격을 자식에게 무리하면서 세습하는 것도 넌센스다. 자선행위라 하더라도 자만심, 과시, 명성, 허영 또는 위장된 야망으로 ‘기부’하는 행위도 진정한 의미에서 기업의 사회적 활동이 아니다. 모름지기 현대 사회의 공인 CEO는 경제적 성과인 가치, 즉 부(富)를 창출하여 관계자들의 번영을 꾀하여야 한다. 동시에 기업은 사회 속에 존재하므로 건전하게 사회적 책임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럴 때 그 기업도 사회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이 될 수 있다. 국민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유한양행을 창업한 후 부(富)를 사회에 환원한 유일한 박사의 공인정신을 기리고 싶다.

이해익 경영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