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음유시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있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6-12-07 15:12 수정일 2016-12-07 15:13 발행일 2016-12-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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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올해 전세계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현대의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밥 딜런이 아닐까?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 떨어지는 한송이 낙엽마저도 아름다운 노래로 써내려갔던 딜런의 당당하고 담담한 감성은 시와 음악의 경계에서 노벨문학상이라는 신화를 쏘아올렸다.

그는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시인도 아니고 문학계에서 공인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문에 그의 가사가 인용될 정도로 문학감성, 시대정신에 투철했다. 그런 현대 음유시인 딜런은 시적인 감성이 풍부한 음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해왔다. 1963년작 포크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베트남 전쟁 등으로 상처난 미국사회의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비틀즈의 등장으로 일렉트릭 사운드에 자극을 받으면서 어쿠스틱 포크에서 일렉트릭 사운드로 전환을 시도한 딜런은 포크 록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함으로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견인차 역할을 한 ‘Blowin’ In the Wind’ 등 반전·평화찬가는 전 세계에 울려퍼졌고 동시대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문학적으로 승화시켜왔다. 덕분에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1999년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1990년대 조지 해리슨, 톰 패티 등과의 콜라보 프로젝트 ‘Travelling Wilbury’ 시절을 거쳐 2009년 33번째 스튜디오 앨범 ‘Together through the life’로 미국, 영국차트를 동시 정복하기도 했다.

비문학인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호들갑에도 평소 냉담한 표정만큼이나 딜런은 쿨하게 노벨상 수상식을 개인적 선약 때문에 불참하는 호기(?)마저 부렸다. 속세에 미련을 두지 않는 ‘음유시인’스러운 태도에 절로 박수를 보냈다.

지난 10월 스웨덴 한림원의 파격적인 선택은 노벨상의 지평을 한없이 넓혔을 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음유시인의 문학계 습격사건은 문화예술계에서 벌어진 일회성에 그치는 사건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딜런이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1970년대의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 송창식 등 통기타 청바지 세대들이 내뿜었던 저항가요들이 초창기 딜런의 자화상이었다면 그 후 세대들과 공감해왔던 정태춘, 김광석, 안치환 등의 선율은 딜런의 통찰력을 닮았다. ‘다행이다’의 이적,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등이 살포시 출간한 문학작품들도 딜런의 발자취가 아닐런지? 타블로, BY 등 힙합 래퍼들의 가사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기성세대의 폭력적인 낙인을 끊임없이 거부하는 문학적 독설이 막힘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누구보다 가사에 목매는 윤종신은 ‘오르막길’, ‘이별의 온도’ 등에서 영원한 문학소년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한국의 딜런들은 어쿠스틱 기타를 뛰어넘고 있다. 그들에게도 소월문학상, 동인문학상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음유시인들을 위한 나라는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