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공정성이 무너진 사회

정보철 이니야 대표
입력일 2016-11-30 15:00 수정일 2016-11-30 15:00 발행일 2016-12-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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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철 이니야 대표

세월이 흘렀지만 지난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박지성 선수가 한 말이 잊혀 지지 않는다. 그는 주위의 거듭된 월드컵 본선 출전 강요에 출전불가 이유를 밝히면서 다음과 같은 은 뉘앙스의 말을 했다.

“그동안 착실히 월드컵 예선을 준비해 온 선수들을 봐서라도 그럴 수 없습니다.”

자신은 부상 때문에 월드컵 예선에 참여하지 않았으니 본선에 참가할 자격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말을 듣고 ‘진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생각했다. 특권을 자부심의 상징으로 여기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믄 일이어서 그 말이 무척 값져보였다. 당시 박지성이 했던 말의 속살은 무엇일까? 요즘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공정성이다.

최근 나라를 뜨겁게 달군 ‘최순실 게이트’는 공정성 문제이기도 하다.

공정성은 신뢰를 보증한다. 공정성이 무너지는 순간 신뢰가 휘청거리고, 곳곳에서 분열과 대립만이 난무하게 된다.

공정성은 두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기회균등과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만 이루어 진다면 어떠한 힘든 일도 참을 수 있다. 사람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은 공정성의 이 두 가지 축이 현저히 무너졌을 때이다. 18세기말 프랑스혁명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이 들고 일어난 동서고금의 모든 혁명은 공정성의 심각한 훼손으로 인한 것이다.

그들이 분노한 것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면, 특권계층은 호화롭게 잘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권계층이 잘살고 있는 것은 기회균등과 정당한 노력의 대가와는 전혀 관계없다. 공동체가 어찌 됐든 그들은 공정성의 규칙을 어기는 것을 당연한 특권으로 여겼다. 역사는 특권을 누리려는 사람에 대해 수없이 엄중한 경고를 해왔다 미국 34대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가진 특권을 원칙보다 중시하는 국민은, 곧 둘 다를 잃고 맙니다.”

특권이 버젓이이 횡행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의 징표이다. 병든 사회는 기능이 원활하게 돌아 갈 수 없다. 특권의 강도와 범위가 넓을수록 사회는 더 깊게 병들어간다. 특권을 가진 자들은 사회를 편 가른다. 비상식적인 힘을 가진 특권층은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다. 소위 불통의 사회이다. 불통은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막히는 것을 의미한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반면 기회균등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건강한 사회의 척도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신뢰 또한 막힘없이 흐르고 통한다. 문제가 생겨도 바로 치유가 가능한 유연한 사회이다.

결국 공정성이란 원칙이 뚜렷이 서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는 결코 발전하고 성공할 수 없다. 건강한 사회는 위대한 국가로 이어진다. 우리가 원하는 위대한 국가는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공정성이란 대원칙이 얼마나 지켜지느냐에 달려있다.

정보철 이니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