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알뜰주유소는 실패작이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6-11-28 11:11 수정일 2016-11-28 18:15 발행일 2016-11-29 23면
인쇄아이콘
양진형상무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저유가 시대가 지속되면서 석유시장은 급변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상응하는 정책을 내 놓지 못해 업계의 불만과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유가 시대인 이명박 정부 시절 수립된 알뜰주유소와 전자상거래 등 석유시장 경쟁촉진 정책이다. 2011년 당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 국내 휘발유는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서, 물가관리 및 수출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러한 정책이 도입됐다.

그러나 이 정책은 원유 도입가와 유류세가 기름 가격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유가구조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세금인하 대신 민간에 공을 넘기는 다분히 포퓰리즘적인 정책이었다.

당시 산업부는 과점화 된 정유4사가 가지고 있는 시장 파워를 주유소 등 유통단계에게 이동시켜주겠다고 꼬드겼다. 알뜰주유소에 각종 정부 혜택을 주어 일반주유소 보다 리터당 100원 이상 차이 나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시행 5년차를 맞고 있는 지금, 알뜰주유소의 도입 목적이었던 유가인하는 퇴색되고, 갈수록 우울한 그림자만 드러내고 있다.

우선 일반주유소와의 가격 차이를 보자. 휘발유가를 기준으로 일반주유소 대비 2014년 48.9원, 2015년 36.8원이었던 가격차는 올해 34.1원(8월 현재)으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유가 시대가 지속될수록 알뜰주유소의 가격경쟁력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는 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 사업 부실관리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때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송기헌 의원(원주을)이 산업부 등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 5년간 알뜰주유소에 대한 정부의 시설개선 자금은 153억 원인데 이중 120억 원을 받은 자영 알뜰주유소의 관리가 가장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 의원에 따르면 석유공사가 운영 중인 자영 알뜰 41곳 중 4곳이 가짜석유 판매, 4곳이 정량미달 등 불법을 저질러 적발됐다. 또한 공사와 자영 알뜰주유소 계약조건에 따라 판매석유 중 50% 이상을 의무적으로 공사에서 구매해야 하지만 320곳인 73%가 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세 번째는 알뜰주유소 정책이 일반주유소의 휴·폐업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알뜰주유소 도입 당시 간판을 바꾼 상당수의 주유소들은 석유시장에서 퇴출이 임박한 부실주유소들인데 정부가 각종 지원을 통해 이들을 살려줘 시장 과잉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알뜰 정책이 시작된 2012년부터 현재까지 2900여개의 일반주유소가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휴·폐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주유소협회에 의하면 올해 들어 8월까지 폐업을 하거나 휴업을 한 주유소는 710개에 이르며 2012년 이후 총 2900여개의 주유소가 휴·폐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유소가 폐업을 하기 위해서는 기름에 오염된 토지를 복원하고 유류 저장탱크 등의 시설을 철거하는 비용으로 1억~1억 5000만 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폐업 비용이 없어서 휴업을 선택한 주유소들도 부지기수에 이른다.

네 번째로 셀프주유소 증가로 인한 주유소 일자리 감소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지만 석유업계는 스스로 일자리를 없애는 모순을 범해왔다. 알뜰주유소 도입으로 무한경쟁에 물린 석유시장은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셀프주유소를 택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실제로 도로공사 산하 경부선 K주유소의 경우 주유기의 완전 셀프화로 지난해 15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했지만 국내 기름 값 중 원유가와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85% 이상으로 주유소 마진은 평균 5%에 불과하다. 여기서 카드 수수료 1.5%를 떼고 나면 실제 마진은 3%대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터당 100원 저렴한 주유소를 탄생시킨다는 것은 결국 국민 사기극에 다름 아니다. 지난 국감에서 많은 의원들이 “이명박 정부의 석유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는 공개적인 세미나를 열어 알뜰주유소 정책을 재평가하고, 조속히 개선방안을 내놓기를 바란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