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레몬'을 위한 시장

황용식 세종대 교수
입력일 2016-11-23 16:15 수정일 2016-11-23 16:15 발행일 2016-11-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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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식 세종대 교수
황용식 세종대 교수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애커로프 교수는 ‘레몬을 위한 시장(Market for lemon)’이란 논문에서 ‘정보’가 경제주체들 간에 불공평하게 공유 안 되는 경우를 ‘정보의 비대칭성 (Information asymmetry)’이라고 칭했다. 또 정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만들어진 간극이 경제주체들에게 잘못된 의사결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애커로프 교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고차 시장을 한 예로 들었다. 흔히 영어에서 불량 제품을 ‘레몬(lemon)’이라고 칭한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신맛을 가진 레몬의 특성을 빗댄 표현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레몬’들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고차의 성능은 그 차를 사용한 주인이 아니면 잘 알 수 없어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레몬 중고차’의 주인이 일반 중고차보다 가격을 약간 낮게 제시한다면, 정보에 무지한 구매자는 가격이 싼 레몬 중고차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구매자는 가성비가 낮은 제품을 선택하는 ‘역선택 (adverse selection)’을 하게 되고, 이런 역선택이 누적되면 궁극적으로 중고차 시장에서 레몬 중고차가 품질 좋은 중고차를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현재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적 원인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4년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있어 다수의 이해당사자, 의사결정자들과 소통되고 논의되어야 할 정보들이 소수의 집단에 의해 지배되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의사결정에 있어 ‘역선택’의 결과를 낳았다.

최순실 파문이 불거진 지난달 25일부터 최근까지 국민연금의 주식 평가손실은 2조1471억원에 달한다. 지난 6월 브렉시트 발생 이후 닷새 동안 손실된 2조3945억원에 육박한다. 최씨는 청와대를 등에 업고 여러 정부부처 정책에 개입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사업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 예산이 2019년까지 총 7000억원 규모다. 내년에만 1278억원이 투입될 계획이다.

최씨 소유의 더블루케이는 3000억원대의 평창올림픽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조카인 장시호씨가 주도하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농림축산부 케이밀(K-Meal)사업, 미래부 산하 창조혁신센터 등에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정부 예산이 지난 4년 간 ‘정보를 가진 자’들에 의해 쓰여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기로에 서 있다. 3분기 들어 수출, 생산, 소비 등 주요 지표가 일제히 악화되어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동력을 잃은 경제부처는 제대로 된 처방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보 불균형으로 마비되어 합리적 의사결정을 못하는 정부부처와 산하기관을 재정비하고 그동안 주요 정책을 독식해 온 소수 의사결정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처벌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성장동력만큼은 꺼트리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대한민국 경제가 지난 4년처럼 ‘레몬을 위한 시장’으로 지속된다면 앞으로 우리 경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