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주유소-일반판매소간 ‘수평거래 허용’ 안된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6-10-31 14:08 수정일 2016-10-31 18:00 발행일 2016-10-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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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최근 석유업계는 주유소-일반판매소간 수평거래 허용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일반판매소란 동네에서 소규모로 가정용 난방유를 취급하는 곳인데 정부는 이 판매소와 주유소간 석유제품 거래 허용의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양자 간에 수평거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음성적인 형태로 주유소-판매소가 연계한 가짜석유 유통 범죄가 기승을 부려왔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를 허용하게 되면 결국 불법행위를 양성화, 합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러한 부작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앞장 서 빗장을 풀려하고 있어 문제다. 명분은 그럴싸하다. 소매단계에서도 가장 저렴한 가격에 석유를 구매할 수 있도록 유통관련 칸막이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법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몇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유가인하 효과보다 불법·탈법으로 인한 공익적인 피해가 더 크다는 결론이 내려져 입법화가 철회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부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규제개혁을 통한 신산업 발굴’의 일환으로 석유분야에서 이 수평거래 허용을 끼워 넣었다. 규제개혁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탈법과 불법을 용인하면서까지 완화하는 것이 규제개혁은 아닐 것이다.

산업부는 그동안 석유분야의 규제개혁 발굴과제를 발굴한다면서 학계와 법조계 및 정유사 등 석유업계가 참석한 TF를 구성해 몇 차례 회의를 한 바 있다. 이 TF 회의에서 수평거래 허용이 의제로 떠오르자 정유사와 석유대리점은 물론 당사자인 주유소협회와 일반판매소협회도 강력히 반대한 바 있다.

그 이유는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주유소-일반판매소간 수평거래 허용이 정부 의도대로 유가인하 효과는 미미한 반면, 가짜석유 유통이라는 탈법·불법행위를 합법화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특히 일반판매소협회는 이 법이 농협의 특혜로 귀결돼 석유유통 시장에서 농협의 지위만 향상시켜 결국 석유유통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농협은 지난 4월 ‘유류판매소 유통구조 개선 방안 연구’ 용역에서 원거리 배송에 따른 농촌지역 일반판매소의 가격 경쟁력 저하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유소-일반판매소간 수평거래의 허용을 추진한 바 있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이하 석대법)은 석유수급 및 가격안정을 기하는 차원에서 주유소와 일반판매소의 취급유종과 영업방법 등 영업범위(업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양쪽의 수평거래를 허용하게 되면 소매 단계의 유통질서 유지를 위한 근간인 업역 구분이 무너지고 불법부정 변칙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사라져 정상적인 품질관리가 불가능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일부 주유소업자들이 방치된 일반판매소를 임대, 주유소의 저장시설과 이동탱크 차량을 이용해 가짜석유를 유통시키는 불법행위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짜석유를 유통하는 주유소업자들이 방치된 일반판매소를 임대하는 이유는 판매소를 일종의 ‘방패막이’로 내세울 수 있어서다. 대로변에 위치한 주유소들은 가짜석유를 판매하다 영업정지를 당하면 치명적인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지만 방치된 판매소는 당초 영업을 하지 않던 곳이어서 영업 피해가 사실상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평거래 허용을 강행하는 것은 규제개혁 실적 맞추기에 급급한 행정편의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진정한 규제개혁은 말 그대로 경제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손톱 밑 가시를 뽑아 경제 활성화와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번 수평거래 허용은 억지춘향이식 규제개혁으로 득보다는 실이 더 크므로 철회돼야 마땅하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