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더 나은 삶을 위한 죽음준비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6-10-26 16:07 수정일 2016-10-26 16:08 발행일 2016-10-27 23면
인쇄아이콘
꾸미기전영수 0701 인터뷰사진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누구나 죽는다. 슬픔과 눈물이 교차하지만 어쩔 수 없다. 급작스럽고 황망하며 괴로운 떠남은 삶의 완성일 수 없다. 어떤 죽음인들 슬프고 괴롭지 않을까 만은 적어도 준비하며 다독이고 품는다면 후회·허무·여한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죽음준비가 필요하다. 죽음준비는 주변인을 위한 마지막 예의다. 남은 자의 슬픔은 떠난 자보다 더 괴롭다. 황망한 작별은 남겨진 이들에게 큰 상처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죽음준비는 설익은 주제이자 피하고픈 이슈다. 죽음은 곧 터부이자 금기어이기 때문이다. 

인생 100세 시대다. 길어진 노후만큼 성실한 죽음준비가 절실하다. 이젠 죽음을 의연하고 건강하게 받아들일 때다. 삶의 질만큼 죽음의 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준비할 때다. 고령사회답게 죽음은 일상적이다. 아슬아슬한 삶의 고비도 어느 때보다 많다. 떠남이 무차별적으로 확산된다. 필요한 건 떠남을 둘러싼 인식변화다. 죽음이 어둡고 부정적일 이유는 없다. 죽음을 떠올릴 때 겸손과 배려가 생겨난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끄덕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죽음준비에서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의 실마리가 있다.

장수대국 일본은 죽음에 익숙하다. 주택가에 공동묘지가 있으니 삶과 죽음의 구분이 한국처럼 뚜렷하지 않다. 늘어난 평균수명과 불안한 노후생활이 일본사회의 죽음준비를 눈앞의 생활이슈로 현실화시킨 결과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말까지 생겨났다. ‘종활(終活: 슈카츠)’이다. 일본사회가 인생의 마지막은 본인 의지대로 스스로 준비하자는 제안에 동의한 셈이다.

‘삶의 완성으로써 죽음’을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엔딩노트(Ending Note)’도 생겼다. 엔딩노트란 삶의 마지막 메시지다. 유서, 유언, 비망록 등과 같은 의미다. 재산상속 등 법률관계의 정리격인 유언장은 엔딩노트의 일부다. 법률조항 이외에도 남기고픈 감성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가 포함되기도 한다. 엔딩노트는 많은 장점을 갖는다. 무엇보다 본인이 떠난 후의 살아남은 자들에게 전하는 중요한 추억박스다. 가족·친지에게 생의 값진 의미와 지혜를 가르치고 유지하는 일종의 저장장치다.

‘엔딩노트’란 제목의 영화까지 개봉돼 관객을 눈물바다에 빠뜨리면 큰 인기를 끌었다.

“죽는 건 안 무서운데 혼자 남을 아내가 걱정”이라던 주인공이 위암말기 선고직후 한 첫 일이 엔딩노트 작성이다. 죽기 전 하고 싶은 10가지 희망사항이 써졌다. 일종의 버킷리스트다. 결국 모두 이뤄내고, 남겨진 가족은 떠나는 아버지의 뜻대로 웃으며 그를 마중한다.

이후 미리 ‘엔딩노트’를 써보는 것이 일본에서 유행을 이루기도 했다. 엔딩노트 작성요령을 알려주는 책까지 출간됐다. 이에 따르면 엔딩노트는 미리미리 준비할수록 좋다. 적어도 1년에 1~2회는 엔딩노트의 날로 정해 인생정리를 하자고 권한다. 엄숙할 필요는 없다. 농담도 좋고 우스갯소리도 괜찮다. 때론 퍼즐문제처럼 복잡해도 좋다. 중요한 건 본인이 죽음을 직접 남기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죽음을 준비하는 것. 2016년 가을, 성큼 다가온 고령사회를 맞는 우리의 숙제이기도 하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