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개그는 개그일 뿐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6-10-12 17:44 수정일 2016-10-12 17:45 발행일 2016-10-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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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코미디에는 코미디? 현재 진행 중인 2016 국정감사에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스타가 탄생했다. ‘어느 개그맨의 죽음’이라는 자괴감과 함께. 그 주인공은 따스한 감성과 촌철살인의 입담, 정치적인 활동으로 화제를 모으는 개그맨 김제동이다. 올해 국감으로부터 1년여도 전, 어느 종편 방송에서 개그소재로 삼았던 코미디가 국감을 통해 또 다른 코미디로 승화됐다. 그가 방송에서 “방위 복무시절 4성 장군 부인에게 아주머니라고 했다가 13일 동안 영창에 갔다”고 한 말을 국방부 차관 출신의 백승주 새누리당 의원이 “군의 명예가 달려 있으므로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며 국감의 증인 채택 여부까지 불거진 것이다. 이른바 노무현 세력과 너무 친하다는 낙인(?)이 찍힌 김제동이 최근 공개적으로 국정교과서, 사드 배치 등에 극렬하게 반대했던 사실과 오버랩되면서 김제동의 영창 개그는 코미디를 넘어 대한민국 정치 코미디로 격상(?)되고 있다. 모든 현상의 ‘정치화’는 ‘희화화’일까?

흔히 폴리테이너(Poli-tainer)는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로 작게는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는 연예인(또는 유명인사), 더 나아가서 선거에 출마하거나 정치적 지위를 획득하는 연예인까지를 아우른다. 요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다루는 연예인은 소셜테이너(Social-tainer)라고도 불린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슐츠가 1999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에 딱 들어맞는 폴리테이너로는 배우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Mr. 터미네이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과거 국회의원을 지낸 이순재, 이주일, 최불암, 강부자, 정한용 등과 재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정찬, 김규리(과거 활동명 김민선) 등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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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이 지난 9일 경기도 화성시 융건릉에서 열린 '2016 정조 효 문화제'에서 역사토크를 하고 있다.(연합)

요즘 미국의 대선 레이스는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사이의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막가는 유세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재밌는 레이스는 폴리테이너들의 합류로 더욱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민주당 골수팬 로버트 드니로를 비롯해 21세기 섹스심벌 스칼렛 요한슨, 여성가수 케이티 페리, 캐롤 킹, 클로이 모레츠, 에바 롱고리아 등도 클린턴 지지 대열에 섰다. 이에 맞서 찰리 쉰, 헐크 호간, 존 보이트 등은 트럼프 유세에 함께하며 거침없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 등에서는 연예인의 소신 있는 정치활동을 최대한 존중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폴리테이너 운신의 폭은 너무 좁다. 심지어 뚜렷한 사유도 없이 프로그램에서 퇴출되는 일도 벌어진다. 보수파로 불리던 연예인들이 찬밥 취급받던 노무현 시절을 거쳐 MB정권 이후 자유진보적 성향의 김미화, 윤도현 등이 방송에서 안 보이더니 최근 김제동 국감 해프닝은 ‘좌익좀비’ 포비아 시비로까지 번지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파헤쳐야 하는 국정감사 업무가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데 왜 오이밭에서 신발끈을 고쳐매려 할까? 폴리테이너의 모든 헛소동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귀결된다.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