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주년] 자유로운 의사소통·확실한 피드백… '생산적 회의' 하자

박효주 기자
입력일 2015-09-16 18:31 수정일 2015-09-17 15:30 발행일 2015-09-1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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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다시 뛰게 하라] 기업문화 혁신-픽사의 '브레인 트러스트' 배우자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벅스라이프’, 최근 칸 국제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으며 공개된 ‘인사이드 아웃’까지. 애니매이션이란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흥행돌풍을 일으킨 영화들이다. 이 작품들에는 공통분모가 한 가지 숨겨져 있다. 바로 믿고 보는 영화사로 유명한‘픽사’(Pixar)의 제작물이란 것. 

픽사는 흥행 영화소로도 유명하지만 집단 창의와 협업의 대표 사례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픽사만의 리더십과 신뢰 문화의 배경에는 가장 중요한 전통인 ‘브레인트러스트(Braintrust)’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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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생전에 픽사에 대해 ‘내 인생에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이토록 빼곡히 모여 있는 집단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픽사에는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훌륭한 인재가 즉시 성과로 이어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픽사의 경우 작업 프로세스를 보면 그림으로 그리기 어려울 정도로 구성원들이 매우 다양하고 긴밀하게 상호작용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브레인트러스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브레인트러스트는 픽사를 대표하는 핵심 멤버들과 영화 감독과 제작팀이 한 자리에 모여, 제작 중인 영화의 이슈나 어려움을 공유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나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장이자 회의 시스템을 말한다.

영화 감독이나 제작팀은 영화 제작 과정 중에 어려움에 봉착하면 8명의 브레인트러스트 멤버나 또는 별도로 조언을 구하고 싶은 다른 동료를 소집한다. 보통 오전에 지금까지 작업된 내용에 대한 상영회가 열리고, 점심 식사 후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에서 감독은 영화 진척 상황과 현재 직면한 문제를 설명하고, 이후 참석자들로부터 적나라한 의견과 피드백을 받는다.

이러한 방식은 타기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아이디어 회의나 리뷰 회의 성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집단 창의와 협업이 강조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회의는 많아졌지만 기대했던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다른 기업들에 비해 유독 픽사의 시스템이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바로 문제 해결 중심의 생산적인 회의시스템에 있다. 국내 많은 기업들에서 집단 창의나 협업이라는 명분으로 비생산적 회의가 늘어나고, 이메일의 참조가 넘쳐나는 등 중요하지 않은 이메일이 수북하게 쌓인다. 이로 인해 정작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한 우를 범하기도 한다. 또한 실적이나 진척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도 지나치게 많다. 사업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롭게 토론하기보다는 보고를 위한 회의가 많다 보니 회의를 위한 문서 작성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실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1년에 2163시간 일하지만 지난해 기준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4개국 가운데 25위(30.26달러)에 불과하다. 끝없이 계속되는 회의와 반 강제적인 기업문화는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픽사 성공비결 핵심은 ‘자유로운 상호소통 문화’

픽사의 경우 브레인트러스트와의 회의가 이슈 해결이 중심이 되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한 신경은 전혀 쓰지 않는다. 제작중인 작품을 평가할 때도 있지만, 단순히 스크리닝이나 진척 상황을 체크하기 위한 회의가 아니라 창작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동료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덧붙여주는 자리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픽사의 경영자가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을 소집하기보다 영화 감독과 제작팀이 적극적으로 회의를 소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둘째 브레인트러스트가 원활하고 생산적으로 운용되는 것은 회의라는 형식에 치중하기보다는 평소에도 의견과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상호 교환되고 결합될 수 있는 분위기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어느 분야의 전문가인지 알고, 서로 편안한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거나 토론하는 문화가 조직 내에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브레인트러스트 미팅이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픽사의 토론 및 회의 문화는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이끌던 시절부터 싹 터왔다.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사옥을 설계할 당시 ‘우연한 맞닥뜨림’을 핵심 요소로 삼고, 의도적으로 구성원들이 자주 접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의도 덕분인지 픽사의 구성원은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 받고자 하는 팀 관리자에게 사전 승인을 받고 공식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에게 직접 회의 참석을 요청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박지원 LG경제연구원은 “픽사와 여타 기업들의 차이는 신뢰문화와 창조적 마찰의 장을 열어주는 리더십에 있다”면서 “우리 기업들도 집단 창의와 협업으로 시너지를 내려면 이를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효주 기자 hj0308@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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