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자금 대출'에 속아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전락

심상목 기자
입력일 2015-03-19 11:22 수정일 2015-03-19 17:52 발행일 2015-03-1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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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자금을 대출해준다는 말에 속아 보이스피싱 일당들의 인출책으로 피소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19일 서울 강동경찰서에 따르면 서울 광진구에 사는 이모(70)씨는 지난 6일 대부업체로부터 신용등급을 올려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회삿돈으로 인위적인 거래실적을 쌓아줄 테니 신용등급이 올라 원하는 만큼 대출을 받게 되면 대출금의 3%를 수수료로 지급하라는 것.

이씨는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전셋집을 마련해줘야 했다. 하지만 대출이 쉽지 않아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서울 동작구 이수역앞 커피숍에서 대부업체 직원을 만나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직원은 이씨에게 “거래실적을 쌓기 위해 통장에 회삿돈을 넣어줄 테니 출금을 해오라”고 했다. 이씨는 이후 이틀간 7차례에 걸쳐 자신의 통장에 들어온 1억6900만원을 인출해 넘겼다.

문제는 이것이 보이스피싱 일당이 이씨를 인출책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지난 16일 이씨는 경찰의 출석 통보를 받았다. 대부업체 직원과는 연락이 끊겼다.

이 대부업체 직원과 일당에 속아 보이스피싱 인출책 역할을 하게 된 이들은 4명이 더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일당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1일까지 불과 15일여만에 피해자 27명으로부터 10억8900여만원을 뜯어냈다. 이런 수법으로 피해액의 80%가 넘는 8억9000여만원을 인출해 중국으로 송금했다.

경찰은 대대적인 단속으로 대포통장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사기범들이 단번에 최대한 많은 돈을 뜯어내려고 새로운 인출 방법을 고안해 낸 것으로 보고 있다.

현금자동인출기(ATM) 1일 출금한도가 600만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대포통장 한 개로 낼 수 있는 ‘매출’은 600만원으로 제한되기에 예전에는 수천만원을 뜯어도 대포통장 한 개당 600만원씩 나눠서 송금시켜야 했다. 하지만 창구에서 계좌 명의자가 직접 돈을 인출하게 하면 ATM 출금한도와 출금횟수 제한, 지연인출제도 등 보호장치가 모두 무력화되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 방식대로 돈을 인출하려 했다면 피해금 10억8900여만원 중 1억원도 제대로 빼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애초 이렇게 짧은 시간에 11억원 가까이 가로채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일당은 지난달 13일 금융감독원을 사칭해 강동구에 사는 A(70·여)씨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으니 돈을 국가정보원 안전계좌에 보관해야 한다”고 속였다.

감쪽같이 속은 A씨는 4500만원을 송금했고, 사기범들은 아예 직접 A씨 집에 찾아가 2억8000만원을 더 뜯어냈다.

하지만 이들은 돈을 더 챙기려는 욕심에 A씨를 다시 용산으로 불러냈다가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붙잡혔다. 일당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

심상목 기자 ssm@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