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오너체제 '땅콩'에 균열… "비행사고보다 더한 참사"

이혜미 기자
입력일 2014-12-14 17:55 수정일 2014-12-14 19:01 발행일 2014-12-1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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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사무장 "폭행·거짓진술 강요"… '땅콩 리턴' 계속되는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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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큰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과 관련해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사과문을 읽고 있다. 조 회장의 사과와 조 전 부사장의 사표에도 회항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연합)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이 언론에 알려진 지 일주일째,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대한항공이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지난 11일 대한항공 압수수색에 이어 12일 조현아 전 부사장과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이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비행기에서 내쫓긴 승무원 사무장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사태는 끝없이 확대되고 있다.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은 지난 12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조 전 부사장의 욕설과 폭행, 회사 측의 거짓진술 강요를 폭로했다. 박 사무장은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도 이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의 앞자리에 있던 1등석 승객 박모씨도 13일 서울서부지검 참고인 조사에서 같은 진술을 했다. 조 전 부사장은 이에 대해 “처음 듣는 일이다”, “모르는 일이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습 국면으로 가던 이번 사태는 진실게임과 형사사건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박 사무장 등의 주장대로 조 전 부사장의 욕설, 폭행과 회사 측의 사건 은폐, 거짓진술 강요 등이 사실로 확인되면 대한항공과 오너 일가는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조 전 부사장은 기내난동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직적 증거인멸과 거짓진술 강요 등으로 관련 임원 등도 줄줄이 처벌받을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14일 오전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직접 사과 쪽지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측은 조 전 부사장이 이날 오전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직접 사과하기 위해 이들의 집에 찾아갔으나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했고 대신 이들에게 사과 쪽지를 써서 집 문틈으로 집어넣고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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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퀸즈한인회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 퀸즈의 네오나르드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최근 '불법 회항'으로 논란이 된 대한항공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여나겠다고 선언했다.(연합)

한편 이번 사건으로 인해 대한항공이 직간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게될 전망이다. 국내 여론은 물론, 외신들도 조 부사장의 처신을 비판하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대한항공 불매운동까지 일고 있다. 뉴욕퀸즈한인회와 뉴욕학부모협의회는 12일(현지시간) 뉴욕 퀸즈의 네오나르드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대한항공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은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건이 알려진 지난 8~12일 대한항공 주가는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9.3% 오르는 데 그쳤다. 특히 검찰이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한 이후 개장된 12일에는 주가가 2.8% 떨어졌다.

또 대한항공이 추진해온 경복궁 옆 특급호텔 프로젝트도 악화된 여론으로 인해 무산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건립예정인 호텔 신축은 ‘재벌 특혜’ 시비에도 정부의 법 개정을 통해 대한항공이 추진해온 숙원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항공의 한 조종사는 대한항공이 입은 손해가 약 1조원에 이른다는 글을 올렸다. 이 노조원은 “물론 경복궁 옆 신축호텔사업이 무산되면 (손해 금액은) 더 상승할 것”이라면서 “비행사고보다 더한 참사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다른 노조원은 “회사가 더 어려워졌으니 앞으로 10년 정도는 임금을 동결해야 겠다. 답이 없다”며 자조적인 발언을 했다.

이처럼 ‘땅콩회항’ 사건이 국내외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의 오너체제 역시 15년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앞서 대한항공은 1997년 225명이 사망한 괌 추락사고에 이어 2년만에 다시 상하이공항 추락사고가 터지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오너경영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이 때문에 이틀 만에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퇴진하고 조양호 당시 사장은 사장직에서 물러나 대외업무만 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조 회장은 같은 해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대한항공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덕에 2000년대 들어 경영체제에 대한 대외 신뢰도를 높여왔으나 이번 ‘땅콩 회항’사건으로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혜미 기자 hm7184@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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