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리턴' 조종간 잡은 기장은 책임없나

천원기 기자
입력일 2014-12-14 13:42 수정일 2014-12-14 18:49 발행일 2014-12-15 19면
인쇄아이콘
2014121501020006960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은 지난 5일 미국 뉴욕 JFK 공항에서 기내 승무원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고함을 지르며 책임자를 항공기에서 내리게 해 월권행위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8일 오후 김포공항 계류장에서 대한항공 비행기가 활주로로 향하는 모습.(연합)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가 조현아 전 부사장의 지시로 미국 뉴욕공항에서 ‘램프리턴’ 한 사건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근본 원인은 조 전 부사장이 지위를 이용해 항공 안전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비행기를 돌린 데 있고, 조 전 부사장의 지시를 무시할 수 없는 강압적인 상황이었지만 승객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기장으로서 그 요구를 수용했어야 했느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램프리턴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기는 하지만 항공기 운항 과정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일이다. 비행을 위해 탑승게이트 브리지(승객이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연결된 사다리)에서 떨어져 나간 항공기가 엔진 이상과 응급상황 등으로 인해 되돌아오는 상황은 흔히 있는 일로 이것 자체가 항공 안전에 치명적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조종사들의 주장이다.

실제 대한항공 비행운영규정(FOM)에 따르면 램프리턴은 승객 수화물에서 미확인 물체가 확인될 경우나 불가피하게 항공기가 지연 출발할 때, 범죄인 탑승시 혹은 항공기 안전에 영향이 있을 시 기장이 종합적으로 상황을 판단해 유연하게 램프리턴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대한항공 노조 관계자는 “일부 조종사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램프리턴이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램프 리턴 자체가 안전을 무시한 행동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조 전 부사장의 지시로 항공기를 회항한 ‘기장’의 책임의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의 지시가 A380 항공기에 탑승한 250여명의 안전을 무시하고 비행기를 되돌려야 할만큼 중대 사안이었느냐는 것이다.

항공법에 따르면 기장은 항공기 비행 안전을 책임지고 탑승한 승무원을 지휘 감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측에 의해 고용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당시 조 전 부사장이 지시를 무시할 수 없었다는 동정론도 제기되지만 권한과 책임이 막중한 기장이 아무리 오너 일가의 지시였다고 해도 회항을 결정한 것이 의무를 다한 것이냐는 지적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당시 비행기 조종을 맡았던 기장의 책임도 무겁다는 내용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하다 전역했다는 정광수 씨는 ‘조 전 부사장과 기장이 보여준 건 대한항공의 민 얼굴’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기장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현아가 램프리턴을 지시한 것은 분명 범죄행위”라면서도 “배나 비행기의 선장과 기장은 제3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숭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데 당시 기장은 그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고 의견을 밝혔다.

객실을 총괄하는 사무장(팀장급 승무원)이 기장에게 회항을 요청하면 대부분 수용되는 현행 절차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보통 브리지에서 떨어져 나간 무동력 상태의 항공기는 토잉카가 밀어 활주로로 진입시키는데 이 때 사무장이 기장에게 회항을 요청하면 보통 확인 절차 없이 수용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항공사와 기장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국토부가 사실조사 중이다.

항공안전정책연구소 관계자는 “기장은 항공기 안전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회항 요청이 접수되면 이유를 살펴보고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객실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확인절차 없이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천원기 기자 000wonki@viva100.com

issue & iss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