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동성애 포용 보수파 반발로 무산

김은영 기자
입력일 2014-10-19 15:19 수정일 2014-10-19 18:01 발행일 2014-10-2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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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드 보고서 '동성애' 문구 삭제

동성애자를 포용하려던 가톨릭교회의 ‘혁명적’ 시도가 보수파의 반발로 결국 무산됐다. 논란이 됐던 가톨릭 세계주교대의원대회(주교 시노드) 보고서에서 결국 ‘동성애’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로마 교황청이 시노드 최종일인 18일(현지시간)을 하루 앞두고 정리한 보고서에는 “그리스도는 모든 가정이 외부에 열려 있기를 원한다”는 내용만 담았다고 독일 dpa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동성애자를 환대하고 이혼·재혼자도 영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했던 주교 시노드의 중간보고서 문구가 18일(현지시간) 시노드 마지막 날 회의에서 모두 삭제된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BBC방송 등은 개혁을 시도하려는 프란치스코 교황 등 진보파와 이에 저항하는 보수파의 갈등의 골이 매우 깊다는 것을 보여준 예라고 해석했다. AFP통신은 이번 표결을 통해 교황을 선두에 세운 가톨릭 내 진보주의 세력과 보수주의 세력이 드러내놓고 맞붙었으며 교황이 일격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지난 13일 공개된 예비보고서에는 “동성애자들도 기독교 공동체에 헌신할 자격과 은총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최종 보고서에선 삭제됐다.

최종 보고서에 포함되려면 주교회의 참가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이혼했거나 재혼한 신자의 영성체 참여 여부와 관련된 문구도 보고서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 보고서는 향후 세계 각국 교구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내년 10월 시노드에서 다시 논의된다.

앞서 동성애와 이혼을 포용하는 문구가 담긴 예비보고서가 발표되자 가톨릭 보수파는 격렬하게 반대했다.

미국의 레이먼드 레오 버크 추기경은 예비보고서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과 교구의 관행에 어긋나는 만큼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파의 반발에 따라 동성애라는 단어가 삭제된 보고서가 채택된 데 대해 가톨릭 진보파의 리더인 독일 출신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가톨릭의 동성애 권리옹호 단체는 최종 보고서에 대해 “무척 실망스럽다”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열린 자세로 토론했기 때문에 향후 시노드에 기대를 걸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투표 후 “활발한 토론 없이 모든 사람이 거짓 평화 속에 묵인하는 분위기였다면 개인적으로 무척 유감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 동성애 인권 단체인 ‘뉴웨이즈미니스트리’(New Ways Ministry)는 “동성애 환대 언급이 빠진 것은 실망스럽지만 시노드가 이 문제를 열린 태도로 공개 토론했다는 점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가톨릭 저널 ‘더 태블릿’의 크리스토퍼 램도 BBC방송에 “시노드에서 토론이 이뤄졌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말했다.

또 시노드 최종 보고서는 각 교구로 전달돼 의견 수렴절차를 거친 뒤 내년 10월 시노드에서 다시 최종 보고서를 펴낼 예정이어서 가톨릭 내에서 동성애에 대한 논의는 계속 폭넓게 이뤄질 전망이다.

김은영 기자 energykim831@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