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위험성 평가…중소사업장 ‘위험성평가’ 보여주기식 많아

정다운 기자
입력일 2024-02-25 16:25 수정일 2024-02-25 16:28 발행일 2024-02-2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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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대상 위험성 평가 안내서 분량 86페이지…작업자 평가규정 인식 불가능
전문가 "문제 의식은 사장, 평가 어떻게 하는지 형식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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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통공사가 월미바다열차 월미공원역에서 노사합동 위험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인천교통공사)

“위험성 평가요? 90% 이상은 속된 말로 ‘가라’로 한다고 보면 돼요. 복잡한 안전 관리 규정 때문에 작업자는 관심도 없고 안전관리 실무하는 사람만 죽어나는 거죠. 작업자 인식이 저조하니 기업은 투자할 가치를 못 느끼고 인당 20만원의 인력을 10명만 써도 하루 200만원이라 기업은 로스(낭비) 비용으로 인식합니다.”

지난 24일 기자가 만난 충청남도 아산 탕정의 모 사업장에서 안전관리자 업무를 맡고 있다는 최 씨의 얘기다. 또 다른 안전관리자 박 씨는 “발주처에서 위험이 왜 없냐고 따지고들 때도 있어 정기위험성 평가 보고를 위해 위험 요소를 남기는 등 사진 날짜, 복장만 바꿔 서류를 작성할 때도 많다”고 전했다.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위험성 평가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현장의 위험 요인을 찾아 사전에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위험성 평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산업재해 예방의 중요 요소로 평가받지만 전문인력 부족, 형식 강조 등 산업현장에서의 정착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국내 359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위험성 평가 실태조사’에서는 50인 미만 기업의 69.9%만 위험성 평가를 시행한다고 답했다.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는 전문인력의 부족(32.5%), 근로자의 관심과 참여 미흡(32.2%)의 답변 비율이 높았다. 특히, 중소현장에서는 복잡한 안전규정에 따른 인식 제고 미흡, 전문 인력 부족 등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가 지난해 공개한 ‘위험성 평가 안내서’는 총 209페이지 분량으로 방대하다. 이에 소규모 사업장을 위해 노동부가 내놓았다는 ‘쉽고 간편한 위험성 평가 방법 안내서’를 살펴봤지만 총 86페이지에 달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중소사업장에서 소수의 인원이 다양한 업무를 병행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장 작업자가 위험성 평가 등의 규정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연수과정주임교수는 “위험성 평가가 한국에서 정착이 되지 않아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위험성 평가를 왜 하는지 본질적인 문제 의식은 사장된 채 지난 10년 동안 평가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형식만 남았다”며 “위험성 평가 제도를 작업자들이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제도·문화 개선 등이 우리 실정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다운 기자 danjung638@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