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농민 울리는 외국인 인력업체…영세농, ‘울며겨자먹기’식 높은 인건비 부담

정다운 기자
입력일 2024-02-12 13:48 수정일 2024-02-12 13:56 발행일 2024-02-1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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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업체 인건비 30·40% 요구…정부 차원 제재 필요성 제기
외국인 인건비 내국인 추월, “태안 하루 일당 18~19만원”
이정식
지난 5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충청남도 논산시 소재 딸기·상추 재배 농가 두 곳의 현장을 방문해 외국인근로자들의 처우를 점검하고 있다.(노동부 제공)

“외국인이 농촌사회에서 갑이 된 것은 오래된 얘기입니다. 정부가 올해 외국 인력을 확대한다고 하니 환영하지만, 문제는 영세농의 경우 사설 인력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업체에서 순순한 인건비 이외에 3~4만원(30~40%)씩 떼 가니 농민들은 남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충청남도 홍성에서 수십 년간 농사를 지었다는 박 씨(68세·남성)의 얘기다. 그는 업체가 담합해 인건비를 더 달라고 하는 상황이라며 농작물 가격보다 인건비가 턱없이 비싼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씨는 “인근의 태안은 하루 일당이 18~19만원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인력업체에 대해 정부가 손을 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충남연구원의 ‘농촌 고령화에 따른 정책제안’ 연구에 따르면 충남지역 외국인의 하루 평균 인건비는 12만 7870원(2021년 기준)으로 나타났다. 하루 일당은 최소 7만원에서 최대 16만원까지 차이가 났다. 반면 내국인 인건비는 6~15만원으로 외국인 인건비가 내국인 인건비를 추월한 상황이다.

정부가 농가의 일손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인 농업인력 수급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하지만 일부 농가에서는 사설 인력업체를 통해 불법 외국인 근로자를 공급받는 경우가 많아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NH투자증권이 지난해 공개한 ‘2023 농촌가구 자산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농민들은 농사일에 필요한 인력을 사설 인력업체(36.9%), 이웃 소개(26.7%), 지인(22.3%) 순으로 구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농촌 사회 고령화 및 행정 간소화 등의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체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2022년 기준)은 절반 가까운 49.8%로, 사용주가 70세 이상인 농가만 46만5000가구에 달한다.

여기에 외국인 계절근로자(E-8 등)를 채용하려면 약 10종의 필요서류가 필요하고 출생증명서 등의 외국어 서류는 번역문 공증도 필요하다. 아울러 산재보험 가입 시 지난해부터 외국인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어 불편하다는 것이 농가의 설명이다. 계절근로자는 5~8개월 체류하는 반면 외국인등록번호는 발급에만 두 달 가까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사용주가 외국인의 국민연금을 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발행한 ‘농업인력 수급 안정 사업 분석’ 보고서에서 고용허가제(E-9) 등 외국인 근로자 고용은 원칙적으로 3개월 이상 돼야 해서 농가 대부분이 불법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국내 농가의 경작 규모는 1.0ha(3025평) 미만이 75만1000가구로 전체 농가의 73.5%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영세농들은 합법적인 루트보다 불법적인 루트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작물 재배 농가의 경우 불법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경우는 전체 85.0% 달한다.

이에 정부는 올해 공공형 계절근로제 시행 시·군을 기존 19곳에서 55곳으로 크게 확대했다. 지역농협의 참가도 23곳에서 70곳으로 증가했다. 공공형 계절근로제는 지역농협이 외국인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 농가에 하루 단위로 공급하기 때문에 영세 농가의 수요가 높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이 같은 방법으로 외국 인력공급을 확대해 농가의 인건비 단가를 낮추고 단기인력 수요가 높은 영세농의 인력난을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정다운 기자 danjung638@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