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채권 돌려막기' 작년 금리 인상에 문제 드러나

박준형 기자
입력일 2023-07-02 13:38 수정일 2023-07-02 17:44 발행일 2023-07-0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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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감원장의 개회사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연합뉴스)

증권사가 고객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자산관리 서비스인 랩어카운트·신탁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기획검사는 약 8년 만이다. 금감원은 채권시장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진 자전거래와 파킹거래 등 증권사의 불건전 영업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지난 5월 초부터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자전거래는 증권사가 특정 주식을 같은 가격과 수량으로 동시에 매도·매수하는 것이다. 파킹거래는 채권 거래 시 장부에 곧바로 기재하지 않고 일정시간 보관(파킹)하도록 한 뒤 결제하는 방식이다. 거래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금리가 내려 채권 가격이 오를 때 장부에 기록하면 실제보다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증권사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단기 투자상품인 랩이나 신탁 계좌에 유치한 자금을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이른바 ‘미스매칭(만기 불일치)’ 전략을 사용한다. 저금리 기조에서는 만기 불일치 전략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 값이 오른 채권을 팔아 쉽게 수익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으로 시장에 넘쳐나던 돈이 빠져나가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 고객들은 환매를 요청하게 된다. 채권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지 못한 증권사는 증권사 간 간접 자전거래, 파킹거래 등을 통한 채권 돌려막기로 환매에 대응한다. 금감원이 지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증권사 랩·신탁에 대한 기획검사를 진행하는 것도 지난해 금리 인상과 시장 경색으로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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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이 같은 채권 돌려막기를 불법으로 보고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은 고유재산과 랩·신탁재산 간 거래, 손실 보전이나 이익 보장을 위한 자전거래 등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자전거래를 통해 자산을 사고팔아 수익률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전까진 시장에서 이슈가 없었는데, 작년 금리 인상기에 문제가 되다 보니까 기획검사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미스매칭을 통해 과도한 목표수익률을 제시하다 보면 환매 대응할 때 불법, 편법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증권업계에선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거래질서를 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자전거래가 가능하다는 예외조항 덕분에 오랜 기간 자전거래가 암묵적으로 이어져왔다.

이번 현장검사 대상 증권사 중 하나인 KB증권도 하나증권에 있는 KB증권 신탁 계정을 이용해 자사 법인 고객 계좌에 있던 장기 채권을 평가손실 이전 장부가로 사들여 수익률을 높였다. 기준금리 급등으로 채권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익률을 맞출 수 없게 되자 하나증권과 간접 자전·파킹거래를 한 것이다.

KB증권은 금감원 검사에 “상품 가입 시 투자자들에게 미스매칭 전략에 대해 설명했고 고객 설명서에 계약 기간보다 잔존 만기가 긴 자산을 편입해 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사전에 고지했다”며 “손실을 덮을 목적으로 다른 증권사와 거래를 한 것도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해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금리가 급등하고 CP(기업어음)시장 경색이 일어나자 2차 고객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거래를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투자 손실을 숨길 목적으로 자전거래를 한 것이 아니기에 불법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이번 금감원 검사에 증권사들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2015년 검사 당시 각종 불법이 포착돼 철퇴를 맞은 적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과 검찰은 당시 채권 파킹거래에 관여하고 향응을 주고받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직원들을 대거 적발했다. 적발된 인원만 148명에 달했다. 수수금액이 1000만원 이상인 일부 임직원은 배임과 수재 등 혐의로 기소됐다.

더욱이 이복현 금감원장이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척결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증권사들은 금감원의 칼끝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자전·파킹거래 과정에서 금품수수 등 불법 리베이트가 오고간다는 의혹도 있어 이번에도 금감원 적발이나 제재에서 그치지 않고 수사의뢰 및 형사처분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박준형 기자 jun89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