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라덕연 일당이 나도 몰래 신용융자까지…" 응어리진 60대 주부의 토로

박준형 기자
입력일 2023-06-06 09:47 수정일 2023-06-06 13:15 발행일 2023-06-07 9면
인쇄아이콘
SG 주가폭락 이틀 후 -1억2000만원…“원금 날리고, 빚만 1.8억원”
“증권사, 신분확인 미흡”…NH투자·이베스트투자·하이투자증권 상대 소송

“우리한테 하나도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대출까지 일어났더라고요. 노후자금이라곤 남편 퇴직금이 다였는데, 가슴에 응어리가 생겨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습니다”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주가폭락 사태로 노후자금을 모두 날린 60대 박모씨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했다. 말하는 중간 중간 목소리가 떨렸지만, 그래도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며 차분히 그간 겪었던 일들을 전했다.

주부인 박씨가 SG 사태 핵심 인물 라덕연(42) 일당이 운영하는 H투자컨설팅업체를 처음 알게 된 건 불과 1년여 전. 딸의 오랜 지인인 A씨가 H업체를 통한 주식투자를 권유한 것이다. 주식투자를 전혀 몰랐던 박씨는 남편의 퇴직금을 보며 망설였다. 괜히 주식에 손댔다 손해 보면 그만큼 노후자금이 줄어드는 것이니 불안한 마음이 컸다.

망설이던 박씨가 투자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 12월 9일. 해외 거주하는 딸을 통해 A씨의 권유가 계속됐고, 결정적으로 A씨의 어머니도 투자해서 고수익을 냈다는 얘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투자를 결심하자 A씨는 직접 집까지 찾아왔고, 새로 주식계좌를 열고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것까지 도와줬다. 모든 관리를 H업체에서 알아서 해준다는 말에 박씨는 휴대전화도 맡기고,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총 1억원을 투자했던 박씨는 2월 중순 잔액을 확인해보고 깜짝 놀랐다. 원금의 두 배 가까운 액수가 찍혀있었던 것이다. H업체에서는 수익금 1억원을 박씨에게 보냈고, 박씨는 계약에 따라 절반인 5000만원을 다시 H업체에 보냈다. 곧바로 나머지 수익금 5000만원도 다시 투자했다.

박씨는 “다 믿고 맡겨서 주식을 뭘 사는지도 몰랐고, 제가 쓰는 전화기로 잔액만 확인했다”며 “그때는 대표가 누군지도 몰랐다. 딸 친구를 통해 능력 있고 대단한 분이라고만 들었는데, 더블로 불어나니 진정한 투자의 귀재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급변한 건 두 달여가 지난 후였다. 4월 25일 잔액에 마이너스 6000만원이 찍힌 것. SG발 주가폭락이 시작된 다음날이었다. 그 다음날은 1억2000만원까지 떨어졌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박씨는 곧장 A씨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A씨는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도 읽지 않았다.

박씨는 “잔액 앞에 상품명이 있어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더니 모 투자증권에서 하는 상품이었다. 그래서 해당 증권사에 전화했는데 비밀번호를 대라고 했다”며 “비밀번호를 모른다고 했더니 그러면 확인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거 문제가 많은 것 같다고, 내일이면 반대매매가 들어가고 집에 딱지가 붙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SG증권발 주가 조작 연루 의혹... 텅 빈 사무실
SG증권발 주가조작 연루 의혹 H투자컨설팅업체 사무실 (사진=연합뉴스)

“딸이 친구하고 연락이 닿았는지, 밤에 문밖 수도계량기에 휴대전화와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며 “그 걸 들고 증권사에 찾아갔다. 그랬더니 직원이 놀라면서 이 상품은 개인이 직접 하는 상품이지 누구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아마 사기인 것 같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제야 계좌를 확인한 박씨는 원금의 1.5배 정도로 신용융자까지 일으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자까지 합쳐서 빚만 1억8000만원. 원금을 포함하면 총 2억8000만원의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박씨는 SG발 사태의 핵심 요인으로 꼽히는 차액결제거래(CFD)와 관련이 없다. 휴대전화와 비밀번호만으로 가능한 비대면 신용융자로 알뜰살뜰 모은 돈을 다 날렸다.

박씨는 라덕연 일당을 상대로 한 고소·고발과는 별개로 해당 증권사를 상대로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라덕연 일당이 자신도 모르게 비대면 신용융자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증권사가 실제 투자자에 대한 신분확인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소송은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가 대리한다. 원앤파트너스는 박씨 외에도 증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4일 현재 키움증권과 삼성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이 확정됐다. 이중 이베스트투자증권과 하이투자증권, NH투자증권은 CFD와 무관한 일반 비대면 신용거래 관련이다.

박준형 기자 jun89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