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서체에 녹인 위트·고전미… 우리 '갬성' 쓰실래요?

박자연 기자
입력일 2022-10-19 07:00 수정일 2022-10-19 07:00 발행일 2022-10-1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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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MZ세대와 소통… ‘서체’ 마케팅에 주목하는 식품유통업계
소비자, 기업 폰트 사용시...자연스럽게 기업 홍보 효과↑
미원체
대상의 미원체(왼), 서울우유협동조합의 서울우유 전용 서체(오). (사진=각사)

식품유통업계가 MZ세대를 겨냥해 ‘서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 배포함으로써 상업적인 용도 활용은 물론, 해당 기업의 브랜드를 기억하는 마케팅 효과를 노리고 있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상은 최근 미원 66주년을 맞아 서체 ‘미원체’를 공개했다. 미원체는 미원의 초창기 로고부터 이어져 온 고유한 형태를 고스란히 담아낸 서체다. 수직·수평의 단단한 구조를 바탕으로 미원 로고의 독특한 장식 요소를 반영해 서체의 감칠맛을 살렸다.

또한 글자 조합에 따라 획의 속도감을 다르게 표현했다. 영문과 숫자, 기호 굵기와 장식 요소도 한글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미원체’는 큰 글자로 사용하는 제목용 서체로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미원체는 한국산업규격 코드에 포함된 한글 완성형 2350자보다 400개 이상 많은 2782자를 지원한다. 덕분에 한글 표기에 어려움이 있었던 생소한 외국 요리도 자연스럽게 표기가 가능하다. 미원체는 미원 홈페이지에서 무료 공개된다.

농심도 지난달 한글날을 앞두고 ‘안성탕면체’를 공개했다. 지난해 한글날을 맞아 출시한 안성탕면 한글표기 한정판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올해는 안성탕면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서체를 선보이게 됐다. 농심이 폰트를 기획해 배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성탕면은 1983년 출시 이후 줄곧 한자로 표기됐다.

안성탕면체는 안성탕면 로고의 특징을 반영하여 담백함이 묻어나는 네모꼴 서체로 개발한 것이 특징이다. 붓글씨 스타일로 디자인한 안성탕면체는 한 획에서 다양한 굵기를 표현함으로써 생동감과 입체감을 주었고, 마무리는 시원하게 뻗어 고전적이면서 긍정적인 느낌이 나도록 했다. 또한 잉크 사용량을 줄이는 ‘ECO체’도 함께 제작해 친환경 트렌드에 발맞췄다. 안성탕면체는 농심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도 지난달 한글날을 맞아 서울우유 전용 서체를 공개했다. 서울우유 전용 서체는 1937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사용돼 온 서울우유의 한글 로고에서 출발한 폰트로, 제목용 서울우유체 1000㎖와 본문용 서울우유체 500㎖ 2가지의 형태로 개발됐다. 특히 ‘ㅅ’의 세로 획과 두께는 균형감 있게 ‘ㅇ’의 곡선을 유려하게 표현했고 ‘ㅜ’와 ‘ㄹ’은 사이 공간을 확보해 가독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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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의 안성탕면체(위), 롯데제과의 시원한설레임체(아래). (사진=각사)

롯데제과는 지난 7월 설레임 출시 20주년을 맞아 ‘소비자 맞춤형’ 리뉴얼을 추진하며 새로운 글꼴 ‘시원한설레임체’를 선보였다. 시원한설레임체는 ‘설레임’을 갓 짜냈을 때의 부드러운 모양과 제품의 제형을 서체에 적용했다. 글꼴은 전체적으로 유연한 곡선 형태의 서체 모양을 유지하면서 가독성 있게 만들었다. 또 ‘설레임’를 상기 시키는 글자인 ‘ㅅ’, ‘ㅇ’의 요소를 적용해 서체의 균형을 조절했다. 시원한설레임체는 롯데제과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받아서 사용할 수 있다.

빙그레는 2015년부터 한글 후원 사업을 위해 폰트를 무료 제공해왔다. 빙그레는 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글 이름을 기업명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실제 빙그레의 창립기념일도 한글날이다. 지금까지 빙그레가 배포한 폰트는 총 5가지로, ‘빙그레체 I·II’와 ‘따옴체’, ‘메로나체’, ‘싸만코체’가 있다. 빙그레는 글꼴을 비롯해 광고음악으로 제작된 음원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배민 서체
배민 다니엘체가 적용된 베트남 현지 옥외 광고판(사진=우아한 형제들)
해외에서 서체 마케팅을 펼쳐 현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기업도 있다.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배민 베트남 법인이 베트남 현지 디자인 스튜디오 라이스와 개발한 서체 ‘배민 다니엘체(BM Daniel’)를 앞세워 베트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배민의 서체 개발은 베트남 현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첫 번째 전략이었다. 배민은 이미 창업초기였던 지난 2012년 국내에서 ‘한나체’를 자체 개발하고 다양한 마케팅에 활용했다. 한나체는 배민 특유의 키치함과 B급 감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하며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배민은 베트남에서도 이러한 성공 전략이 통할 것으로 판단, 2019년 현지 진출과 함께 배민 다니엘체를 개발했다. 배민 다니엘체는 성조 부호가 복잡해 디자인이 어려운 베트남어 알파벳을 위트있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민은 다니엘체를 활용한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왔다. 라이더 유니폼과 굿즈, 광고 등에 서체를 활용한 재미있고 유쾌한 카피가 베트남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2019년 6월 진출 초기에는 국내와 명절 문화가 비슷한 베트남에 재미난 문구를 넣은 세뱃돈 봉투로 완판을 기록했다. 또 머그잔, 우비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마케팅을 이어갔다.

배민은 이 같은 배민 특유의 마케팅이 배민의 베트남 시장 안착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배민은 베트남 진출 3년만에 호찌민·하노이 등 21개 도시에서 월 이용자 350만명 이상을 확보해 배달 주문 앱 3위에 올랐다.

기업들이 전용 서체를 선보이는 것은 손글씨가 사라진 인터넷·모바일 시대에 MZ세대에게 서체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서체에 해당 기업의 브랜드를 담을 수 있고, 무료로 배포해 수익성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소비자에게 브랜드 정체성을 알리는데 좋은 수단이 된다는 설명이다.

기업들은 독특한 느낌의 서체를 통해 해당 기업이나 브랜드를 기억하는 마케팅 효과를 가져오고, 소비자는 무료 폰트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스레 좋은 긍정적인 이미지 각인이 된다는 것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서체는 기업 정체성을 고객들에게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한 문화적 소통 도구”라며 “전용 서체를 통해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고, 기업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자연 기자 naturepark12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