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거래정지 종목 96개, 묶인 돈 9.4조원…개미들 발만 ‘동동’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22-08-11 10:09 수정일 2022-08-11 14:42 발행일 2022-08-1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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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젠
경영진의 횡령·배임 등으로 주식 거래가 정지된 코스닥 상장사 신라젠의 거래 재개 여부를 심사할 기업심사위원회가 열린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신라젠 주주연합 회원들이 거래재개를 촉구하며 집회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3년 이상 거래 정지된 종목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거래정지가 장기화되고, 거래 정지된 종목 수도 늘어나면서 투자금이 묶인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11일 한국거래소 데이터를 자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증시에서 거래가 정지된 종목은 총 96개(이하 9일 기준)였다. 시장별 거래정지 종목은 코스피가 11개, 코스닥 74개, 코넥스 12개로 코스닥 종목이 가장 많았다.

거래 정지 기간은 5개월 이상이 61.4%(59개)였다. 3년 이상 거래가 정지된 종목도 11.4%(11개)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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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가 정지된 사유로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32개)이 가장 많았고, 이어 상장폐지 사유 발생(26개), 투자자보호(7개), 감사의견 거절(7개), SPAC 합병(6개), 회생절차개시신청(4개), 기타 공익과 투자자보호(2개), 주식병합 등(2개), 기타(10개) 등이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거래정지 사유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많다는 것은 상장회사로 적합하지 않은 부실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부실이란 재무적 측면에서의 곤경(장기 영업손실, 자본잠식 등) 뿐만 아니라 횡령·배임 등으로 지배구조가 불건전하거나 재무제표를 신뢰할 수 없는 ‘감사의견 미달’의 비재무적 상황도 포함된다”고 짚었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감사의견 거절 사유로 인한 정지가 7건 밖에 안 되어 보이지만, 실제론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32개)에서 상장폐지(26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감사의견 한정이나 의견 거절 등 감사의견 미달로 거래정지 사유가 중복해서 발생한다”며 “감사의견 미달은 투자의사 결정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재무제표 정보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 미국, 영국 등 선진시장에서는 즉시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하지만 우리나라는 장외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상장폐지 주식은 곧 휴지조각을 의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5월 경영진의 배임·횡령 혐의로 주식거래가 정지되면서 거래정지 기간이 2년 2개월이 경과된 신라젠의 경우 소액주주 수가 16만5680명(2020년 말 기준)이다. 이들의 지분율은 99.99%에 달한다. 이 중에는 억 단위 투자자도 포함돼 있다. 상장 폐기 위기에서 6개월간의 개선기간을 부여받은 신라젠은 개선기간 종료일인 오는 18일부터 15영업일 이내에 개선계획 이행내역서, 개선계획 이행결과에 대한 전문가의 확인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거래소는 서류를 제출받은 후 20영업일 이내에 코스닥시장위원회를 개최해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만일 상장폐지가 최종 결정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시가총액 그래프
(자료=한국거래소)

현재 96개 종목의 거래정지로 주식매매를 하지 못하고 묶인 투자자들의 자금은 총 9조429억6049만원(시가총액 기준)에 달한다. 거래정지가 장기화되면서 투자자의 재산권 침해와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가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투자자들의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정의정 대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거래정지를 시키지만 오히려 거래정지로 인해 투자자 피해가 더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며 “거래정지 기간이 장기화되고 거래정지 종목이 늘어나면서 투자자 피해가 가중되는 측면이 있으니 투자자 피해를 줄이는 쪽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상장종목에 대한 시장조치는 안정적인 시장운영 및 투자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므로 기존 주주와 더불어 미래 투자자도 고려해야 하며, 이에 따라 상장회사의 거래정지 사유가 해소되기까지 거래재개는 불가하다”며 “일시적으로 시장전체 거래정지 종목수가 늘어날 수는 있지만, 시장관리자 입장에서 안정적인 시장운영과 투자자 보호가 우선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거래 연속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거래재개 절차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본래 거래정지 제도는 정보비대칭 상황에서 새로운 정보를 시장에 신속히 공급하도록 규율하는 체계로, 투자자 피해 예방을 위해 거래를 장기간 중단하는 것이 본연의 목적은 아니었다”며 “장기적으로 원인 사유의 해소를 거래재개 요건으로 할 것이 아니라, 원인 사유의 공시를 거래재개 요건으로 하여 거래정지 기간을 단축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다만, 충실한 공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업의 공시에 대한 인식개선도 필요하고, 개인투자자들도 정보에 기반한 성숙한 투자문화를 형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본적으로 상장적격성이 떨어지는 기업은 신속히 퇴출시킬 수 있도록 장외시장 활성화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