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우수기업 대출이자 할인 필요"… ESG촉진에 금융 역할 필수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21-06-09 11:17 수정일 2021-06-09 13:47 발행일 2021-06-09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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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B금융그룹, ESG위원회 출범
KTB금융그룹 이병철(왼쪽 일곱 번째) 회장이 지난달 26일 KTB투자증권 등 각 계열사 대표 및 임원들과 함께 ESG위원회 출범 선언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KTB금융그룹 제공)

“솔직히 국민연금 ESG 투자는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국내총생산(GDP)의 43%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의 ‘큰 손’ 국민연금이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급에 따라 차등 투자를 가속화하겠다고 선언하자 한 대기업 관계자가 털어놓은 말이다.

ESG 경영이 세계적 화두라지만 기업이 ESG 위원회와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ESG 경영 성과를 100% 기대하긴 어렵다. 규제를 통해 강제하는 방식도 부작용이 우려된다. ESG 경영 촉진에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9일 자본시장연구원의 ‘기업의 ESG 경영 촉진을 위한 금융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이사회나 최고경영자(CEO)는 ESG 활동에 의미 있는 자원을 배분할 유인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재무적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CEO는 사회적 가치보다는 재무적 가치, 즉 돈이 되는 곳에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려 한다. 만일 사회적 가치를 위해 경제적 가치를 희생한다면, 그 CEO는 직을 오래 보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례로 사회적 가치추구 경영의 아이콘이었던 프랑스 다논의 파베르 CEO는 대주주에 의해 교체됐다. 다논의 경영실적이 경쟁사에 비해 크게 저조하고 주가 수익률도 부진하자, 행동주의 펀드들로 구성된 다논 주요 주주들이 CEO 사퇴를 촉구한 것이다.

사회적 가치 투자는 재무적 가치와 달리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도 어려운 문제가 있다. ESG가치는 비계량적인 요소들로 구성돼 있는데, 이를 계량화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성과 달성에도 사회적 가치 투자는 재무적 가치에 비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다. 기업의 ESG 경영 촉진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 감소, 폐수 방출시 과징금 부과,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등 규제를 강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은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화그룹 ESG 위원회 출범
한화그룹은 최근 ESG 위원회를 출범하고, 첫 활동으로 ESG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진행된 ESG 세미나 모습. (한화그룹 제공)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규제를 강화하면 상당수 기업이 규제의 임계수준까지만 ESG 가치에 투자하게 될 것”이라며 “규제 미준수 기업은 생존이 어려워 공급망 비용이 상승하고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경제전반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기업이 규제의 임계수준 이상으로 ESG 가치에 자원을 배분하도록 유도하려면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생태계 조성이 필요한데 여기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

자본시장연구원은 기업의 ESG 경영 촉진을 위한 금융의 역할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ESG 가치의 시장 거래 활성화다. ESG 가치에 대한 자원배분을 임계 수준 이상으로 수행하는 기업에는 그 초과분만큼 재무적 이익으로 돌려주어 기업들이 유인을 갖고 ESG 경영을 가속화하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탄소배출권 거래시장, 플라스틱 가치 거래소, 전력거래소 등이 이에 해당된다. 둘째, ESG 성과연계 금융 중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금융사가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줄 때 ESG 성과 우수 기업에 대출이자를 할인해주는 중개 방법 등을 말한다. 다논의 ESG 신디케이트론처럼 ESG 성과가 우수할수록 대출금리를 할인해주고, 반대로 ESG 성과가 나쁘면 대출금리를 올리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ESG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는 인프라다. ‘무늬만 ESG’(워싱)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객관적인 측정은 중요하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항목들로 구성된 ESG 요소를 계량화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은 ESG 요소의 표준화와 계량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정합성을 갖춘 ESG 요소들을 찾아 표준화, 계량화 작업을 추진하되 한국적 상황과 산업별 특징을 고려해 ESG 요소들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ESG 관련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사들은 기업들이 ESG 주요 내용을 공시하도록 유도하고, 관련 지수 개발에도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자산운용사와 연기금은 ESG 점수가 우수한 기업에 더 많은 지분투자를 하고, ESG 점수가 낮은 기업에는 투자비중을 줄이거나 투자를 배제하는 전략도 고려할 수 있다.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은 “기업은 주주-이사회간 대리인 문제, 사회적 가치의 측정 어려움 등으로 임계 수준 이상으로 ESG 가치에 자원을 배분토록 유도하는 것이 쉽지 않아 유인부합적 생태계 조성을 위해 금융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수환 기자 ksh@viva100.com

ESG 경영이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