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혐오 논란, 지나친 자기검열이 답일까

노연경 기자
입력일 2021-06-06 15:06 수정일 2021-06-06 15:07 발행일 2021-06-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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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생활경제부 기자

편의점 GS25가 남성 혐오 표현으로 사용되는 집게 손가락 모양을 홍보 포스터에 사용해 한바탕 홍역을 치르면서 유통·식품업계가 ‘손가락 주의보’를 발령했다.

이전에 올렸던 홍보 게시물 중 집게 손가락 모양이 들어가 있는 게시물은 대부분 삭제 조치됐고, 근래 들어 올라온 홍보 게시물에서는 손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일단 오해의 소지가 될 만한 행동은 최대한 조심하자는 식이다.

리스크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기업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빠른 사과와 지나친 자기검열을 남긴 이번 선례가 마녀사냥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논란의 시발점이 된 GS25는 해당 게시물을 만든 디자이너와 마케팅 팀장에게 징계 조치를 내렸다.

여성 고객에게만 할인 쿠폰을 지급해 비난을 받은 무신사는 이벤트 포스터에서 카드를 들고 있는 손가락 모양이 논란이 되자 대표가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번 일로 불통이 튄 기업들은 재빠르게 공식 사과문을 올리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속사정을 들어보면 억울하다는 곳도 많다. 광고에서 흔히 사용하는 손가락 모양이었을 뿐, 혐오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곳은 없었다. 기업들은 일단 논란의 타깃이 되는 것을 피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제대로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일단 화부터 피해보자는 식으로 대응을 하다 보면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 혐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이번에 기업들이 남긴 선례처럼 관계자 징계조치와 같은 강한 ‘액션’을 요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 선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문제제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보편적인 소비자가 바라보는 시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노연경 기자 dusrud1199@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