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뷰] 오롯한 길 위에서, 희망과 치유를 기원하는 어울림 속에서 백건우를 만나다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1-03-17 18:45 수정일 2021-03-17 18:26 발행일 2021-03-17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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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피아니스트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서서히 미쳐가는 자신의 상태를 깨달은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은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사랑하는 아내이자 피아니스트 클라라( Josephine Schumann)와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스스로 가둠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와 라인강에 투신하기 전 마지막으로 ‘유령변주곡’(Thema mit Variationen, WoO 24 Ghost Variations)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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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진행된 ‘백건우와 슈만’의 백건우(사진제공=빈체로)

20세기 헝가리 대표 작곡가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벨라 버르토크(Bela Bartok)는 전쟁을 피해 미국 망명생활을 하던 중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캐나다 접경지인 새러낵 호숫가에서 ‘피아노 협주곡 3번’(Piano Concerto No. 3 in E major, Sz. 119, BB 127) 2악장을 마무리하고 뉴욕 아파트로 돌아와 3악장 작곡 중 세상을 떠났다.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23살 연하의 피아노 제자이자 두 번째 부인이었던 디타(Ditta Pasztory)가 자신이 떠난 후에도 평온하고 풍요로운 여생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슈만의 ‘유령변주곡’과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전혀 다른 음악가들의 작품이지만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지난 12일과 14일에 열린 ‘백건우와 슈만’ ‘백건우 버르토크 협주곡’에서 백건우에 의해 연주됐다.

슈만의 ‘유령변주곡’과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2021년 피아노인생 65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거장 백건우를 만나면서 그 미묘한 흐름은 선명해졌다.

슈만의 작곡가 데뷔곡 ‘아베크 변주곡 Op. 1’(Abegg Variations, Op. 1)부터 ‘유령변주곡’까지를 오롯이 혼자, 쉼 없이 연주하는 백건우. 경쾌하게 웃음 짓거나 씩씩하게 팔을 흔들며 행진 혹은 춤을 추는 듯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어우러져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Fantaisie for piano and orchestra, L.73),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백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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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백건우 버르토크 협주곡’ 중 백건우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사진제공=빈체로)

잇단 무대에서 마지막 곡으로 선택돼 연주된 두 곡은 최근 이슈가 된 백건우의 개인사 그리고 어렵고도 척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이 넘쳐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팬데믹을 향한 희망과 치유 그리고 평안을 염원하는 간절함이 깃들었다.

그렇게 ‘피아노 구도자’로서의 오롯한 길 위에서, 희망과 치유를 기원하는 어울림 속에서 만난 백건우는 전혀 다른 듯 보이지만 관통하는 정서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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