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개미핥기가 된 주식리딩방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21-03-10 14:15 수정일 2021-03-10 14:16 발행일 2021-03-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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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금융증권부 차장

“지금 물타기 하고 있습니까? 하락장에서도 우린 수익입니다.” 한 주식리딩방이 회원을 유치하며 한 말이다.

올해 초 한 주식리딩방에 가입한 A씨. 그가 가입을 결정한 계기는 수익 인증 샷이나 확신을 심어주는 말 보다 “나도 한때 주린이(주식+어린이)였다”는 운영자의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과거 주식으로 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 봤다는 리딩방 운영자는 주린이도 본인처럼 주식고수가 될 수 있다며 A씨를 설득해 유료회원으로 가입시켰고, 수백만원대 이용료를 챙겼다.

하지만 하락장에서 그가 기대했던 수익은 나오지 않았다. 가입자들이 의문을 제기하자 리딩방 운영자는 지수 탓, 미국 탓을 하며 ‘홀딩’을 외쳤고 물타기를 시켰다. A씨가 서비스 해지를 요구했을 때는 이미 그간의 서비스 이용료와 위약금을 제하고 손에 쥔 금액이 몇 푼 되지 않았다. 마이너스가 된 주식계좌 잔고는 덤이었다.

리딩방 중에는 전문성과 정보를 바탕으로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개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좋은’ 리딩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의 자금을 노린 유사투자자문업자와 주식 리딩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피해 사례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금감원을 바라보지만 금융위 인가도 받지 않고 특별한 자격제한이 없는 유사투자자문업자로 부터 이들이 구제를 받을 길은 요원해 보인다.

정부의 부동산정책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웬만해선 집 장만하기가 어려워졌고, 인생역전을 기대하며 저금리 기조에 ‘빚투’(빚내서 투자)에 뛰어든 주린이들이 많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주린이 출신의 무자격 리딩방 운영자가 만든 개미지옥이었다니. 피해자들의 한숨이 ‘빚투 잔치’ 끝에서 버블 붕괴의 시작을 알려주는 예고음은 아닐까.

김수환 금융증권부 차장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