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헤지펀드에 '기업 미래'는 없다

류원근 기자
입력일 2019-03-12 16:21 수정일 2019-03-12 16:21 발행일 2019-03-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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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원근 산업·IT부 부국장

오는 22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총회를 앞두고 다국적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수 조원 상당의 배당을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 1월 주주제안을 통해 현대차와 모비스에 보통주 기준 배당금 4조5000억원과 2조5000억원을 각각 요구했다. 이는 보통주 1주당 2만1967원, 2만6399원 배당에 해당하는 액수로 현대차와 모비스가 제시한 주당 배당금 4000원(현대차 중간배당 포함)의 5~6배 수준이다.

업계는 엘리엇의 이번 제안을 두고 회사의 장기적 발전 보다는 단기 이익만 추구하려는 전형적인 ‘독이 든 사과’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현대차는 현재 위기상황이다. 엘리엇의 주장대로 배당을 실행하게 되면 현대차는 미래에 대한 투자 재원을 배당에 쏟아 붓게 돼 기업의 지속성장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쓰일 재원이 현금 배당에 모두 쓰인다면 회사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주주들에게까지 막대한 손실을 끼치게 될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엘리엇이 현대차에 요청한 보통주 배당 총액 4조5000억원은 우선주 배당까지 고려하면 총 5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현대차 당기순이익 1조6450억원의 353%에 달하는 액수다.

엘리엇이 고배당을 요구하고 나선 이유는 분명하다. 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은 현대차와 모비스 주식을 각각 3.0%, 2.6%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지난해 4월 이후 현재까지 주가가 하락함에 따라 약 34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만약 엘리엇의 배당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엘리엇은 단번에 2000억 이상을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기업과 주주의 미래가치에 대한 고민을 찾을 수 없고, 그저 투자손실을 만회하겠다는 목적만이 보인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100여 년만에 찾아온 자동차 패러다임의 대격변기를 맞아 경쟁사들은 전동화,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와 모비스 역시 미래 자동차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와 연구개발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중대하고 선결적인 경영현안이다. 지난달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오는 2023년까지 총 45조3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도 기업의 미래가치를 겨냥한 포석이다. 이는 현대차가 지난 5년(2014~2018년)간 투자한 금액(28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58.9%나 늘어난 규모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세계 양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이 잇달아 엘리엇의 과도한 배당 요구에 반대하고 나선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10일(현지시간) 글래스루이스는 자문보고서를 통해 ‘빠르게 진화하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현대차가 경쟁력 향상과 장기적 수익 제고를 위해 상당한 연구개발 비용과 잠재적 인수합병 활동이 요구될 것이라고 인정한다’며 ‘대규모 일회성 배당금을 지급해 달라는 엘리엇의 제안에 대해 주주들에게 권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11일에는 ISS도 엘리엇이 제안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배당에 대해서는 반대를 권고했다. 향후 연구개발(R&D)이나 공장 투자를 위한 자본 요건 충족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래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만이 실적 개선과 주주환원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인식이 반영된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이다.

류원근 산업·IT부 부국장 one77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