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30년 은행원서 작가로 제2의 삶… "2022년 노벨문학상 받는다"

장애리 기자
입력일 2016-04-25 07:00 수정일 2016-04-25 09:25 발행일 2016-04-2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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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열정' 가득한 12년차 작가 송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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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양의 작가

예순 넷.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승선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새로운 출발선을 넘은 이가 있다.

30년 가까운 삶을 보낸 은행을 떠나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로 변신한 월파(月波) 송양의(64·사진)씨 얘기다. 

직장에서의 퇴임을 앞두고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그의 고민은 글을 만나자 비로소 멈췄다. 은행원에서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지금 이 일을 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처럼 보인다.

◇“잘 쓰시네요, 한 마디에 문학에 눈 떠”

“제 또래 은퇴자들을 보면 보통 친구들과 만나 낮술을 마시고 골프를 치고 가끔 단체 해외관광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입니다. 퇴직할 때쯤 은행 동기모임에 나갔는데 열에 아홉은 이런 생활을 하며 노후를 보내더군요.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호랑이도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잖아요? 은퇴 후 어떤 일을 하며, 세상에 어떤 존재로 기억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퇴직을 5년여 앞둔 2005년, 송 작가는 이러한 고민을 진지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몸, 온전한 정신으로 30~40년을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고 허무했다. 그래서 퇴근 후 무작정 문화센터, 교육 아카데미 등을 찾아 다니며 이런저런 수업을 들었다. 처음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다. 재미는 있었지만, 오래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자리 같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사람들을 내적, 외적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접했다.

“1년간 문학관을 다니며 글쓰기 강의를 받았습니다. 과제로 시를 한 편 써 제출했는데 ‘잘한다’ 소릴 들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열심히 하라는 응원이라고 생각했는데 강사님의 칭찬이 계속되다 보니 ‘내게 정말 소질이 있나?’라는 생각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첫 시집 ‘세상 밖의 세상으로 가라!’를 출판한 그는 이제 어느덧 12년차 작가가 됐다. 그동안 시, 소설, 수필, 여행기 등 29권의 작품을 썼다. 때로는 벅찬 시간기도 했지만,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소설 한 권을 쓰려면 최소한 원고지 2000매를 써야 합니다. 좋은 문장이나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작은 종이에 메모를 해 뒀다가 그걸 PC에 옮겨 쓰죠.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 퇴고도 15번 정도 합니다. 그렇게 원고지 10장을 완성하기 위해 하루 10~15시간 정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지난 10년간 하루 4시간만 잤습니다.”

작가는 얼마 전 제주도에 빌라 한 채를 마련해 집필실로 꾸몄다. 자식들 모두가 출가했고, 부인도 작품활동을 방해하지 않아 홀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글쓰기에 매진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일년 중 반은 제주도에 있을 계획”이라는 그는 소중하고 간절한 목표를 가졌기 때문에 이토록 앞으로도 더욱 공을 들이겠다고 밝혔다.

말을 마친 작가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명함크기의 종이 몇 장을 꺼냈다. ‘1일 1권 책읽기’, ‘한 해에 3권 이상 책 발간하기’, ‘1년에 3번 해외여행 가기’ 등 그의 장·단기 목표가 적힌 계획표다. 그 중 2022년 노벨문학상 타기’와 ‘장학재단 설립’이 눈에 띄였다.

“제 목표 중 하나가 바로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입니다. 주위에 많이 얘기를 하고 다니는데, 남들은 ‘어떻게 네가 노벨문학상을 타냐’는 반응을 보이죠. 하지만 제 진짜 목표를 끝까지 듣고 나면 조금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최종 목표 ‘월파 장학재단 설립’…“가족 응원에 감사”

그는 인생의 최종 목표인 장학재단 설립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노벨문학상을 타고 싶다고 말했다.

“목표를 크게 갖는다고 누가 저를 해하거나 타박하지 않습니다. 실현 가능한 꿈을 가질 때보다 더욱 치열한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죠. 직장생활을 할 때 토익만점받기 같은 도전을 여러 번 해봤는데 이렇게 ‘실현 가능한’ 목표만 세웠더니 딱 그 만큼만 노력하게 되더라구요. 열심히, 열정인 삶을 살고자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는 다 이뤘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도 이러한 생각의 연속이죠.”

작가로서의 도전도 그랬다. 쉰이 넘어 시와 소설을 쓰겠다는 그를 보고 어림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한둘이었으랴. 그러나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춰 생활을 하다 보니 한해 평균 독서량 5백여 권, 작품 출간 3권을 10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노벨상을 타면 상금이 약 20억원쯤 됩니다. 그걸 재원으로 해서 제 호를 딴 ‘월파 문학관’이나 ‘월파 장학재단’을 세우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삶에 대한 열정에 놀랐고, 원대한 최종 목표가 부러워졌다.

“고향이 충남 청양, 칠갑산 아랫 동네입니다. 초등학교 동창생 66명 중 5명 정도가 중학교를 갔을 정도로 형편이 좋지 못한 곳이었죠. 똑똑해도 돈 없어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친구들을 많이 봤습니다. 저는 다행히 자식교육에 적극적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이사를 했고 장학금을 받아 대학까지 나왔지만, 만약 제게도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더 큰 꿈을 꿨을 거란 미련이 남습니다. 그래서 돈 때문에 공부나 하고싶은 것을 포기하게 되는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그는 지난 2010년 대학입학을 앞둔 고등학생 5명에게 500만원씩, 25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그 해 받은 퇴직금에서 쪼갠 돈이다. 개인이 짊어지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 하지만 지금도 그는 매년 천안지역의 중고등학생 3~4명에게 학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큰 돈을 내놓아야 하면서도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일, 버겁지 않을까? 그는 “사실 책으로 얻는 수익은 거의 없습니다. 본전만 해도 다행인 작품들이 많았죠. 그래도 가족들이 이해해주고 응원해준 덕택에 글쓰기도, 장학금 전달 계획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하고싶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 동의해 줘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은퇴를 앞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나이를 따지지 말고 지금, 현재, 오늘 이순간부터 시작하세요. 내일 시작하면 늦습니다. ‘은퇴’, ‘노년’이란 단어에 크게 신경쓰지 마세요. 비용이 문제라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세요.”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는 내일’을 가졌다는 송양의 작가. 그의 노년은 더 성장하는, 더 즐거운 삶을 향한 여정일 거라고 확신하게 됐다.

장애리 기자 1601chang@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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