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억원에 팔린 알리안츠생명…비슷한 위기의 보험사 속출 예상

이나리 기자
입력일 2016-04-08 11:07 수정일 2016-04-08 11:07 발행일 2016-04-0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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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자본 59조→17조 감소 추산…고금리상품 많은 생보사 위험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이 중국 안방보험에 약35억원 ‘헐값’에 팔리면서 경영 여건이 좋지 않은 국내 다른 생명보험사들도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보험업계는 2020년 보험업 새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이 도입되면 과거 고금리형 장기 보험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명보험사(이하 생보사)를 중심으로 충격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자본잠식 상태까지 이를 것으로 보여 향후 몇 년간 인수·합병(M&A) 시장에 생보사 매물이 줄줄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다.

안방보험그룹 사옥
동양생명에 이어 알리안츠생명을 인수한 중국 안방보험그룹 사옥
◇ 한국 알리안츠 1조원 투자, 헐값 35억원에 매각…보험업계 충격 안방보험이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을 애초 시장 예상가인 2000억~3000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300만 달러(약 35억원)에 인수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보험업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알리안츠생명의 실적이 그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던 데다 각종 악재가 쌓인 결과라는 시각이다.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은 2012년 200억원, 2013년 513억원, 2015년 87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입어 가까스로 손실을 면한 2014년(64억원 순이익)을 제외하면 최근 몇년 간 적자 경영상태를 지속했다.

이는 제일생명(알리안츠생명 전신) 인수 때 떠안은 고금리 보험상품 부담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탓이 크다. 제일생명 때 공격적인 영업으로 연6~8%대의 고금리 확정형 장기 상품을 대거 팔았기 때문이다.

노사 갈등과 영업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친 것도 알리안츠생명의 헐값 매각을 부추긴 요소로 작용했다.

유럽이 올해부터 보험부채의 시가평가를 골자로 하는 새 자본규제제도(Solvency II)를 적용하면서 독일 알리안츠그룹이 한국법인을 헐값에라도 시급히 정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유럽의 새 감독체계 아래에서는 한국법인의 재무현황이 독일 본사의 연결 재무제표에 함께 반영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새 감독기준에 대비해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이 시가평가에 기반한 재무제표를 본사에 보고했을 것이고 독일 본사에서 한국법인의 재무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을 미리 알아챘을 것”이라며 “한국법인이 본사의 연결 재무제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매각을 서둘렀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 IFRS4 도입 앞두고 ‘제2의 알리안츠’ 출현 예고

문제는 시가평가를 반영한 새 회계기준이 4년 뒤 한국에서도 도입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IFRS4는 총 43개 국제회계 기준서 가운데 보험계약에 적용되는 기준으로 2단계 기준서는 보험부채를 평가하는 방식을 원가에서 시가평가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12월 금감원과 한국회계학회가 개최한 IFRS4 2단계 도입 컨퍼런스에서 중앙대 정도진 교수는 시가평가를 반영한 보험부채적정성평가(LAT) 방식을 도입하면 보험부채가 2014년 회계 기준으로 볼 때 약 42조원 증가한다는 추산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평가 결과에 IFRS4 2단계 기준을 단순 적용(상품 포트폴리오별 상계 불인정)하면 보험업권의 총자본금이 59조원에서 17조원으로 급감한다는 어두운 추정 결과가 나온다.

과거 확정형 고금리 장기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명보험사의 경우 충격이 불가피하고, 자본금이 부족하거나 추가로 확충하지 못하는 경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험업 건전성 감독기준인 지급여력비율(RBC)을 충족하지 못하는 회사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수십조원의 자산을 갖고도 수십억원에 매각된 ‘제2의 알리안츠생명’이 나타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M&A시장에는 외국계인 PCA생명과 ING생명이 매물로 나와있다. 아울러 저금리 기조가 심화할 경우 보험업계가 직면하는 상황은 정 교수의 시나리오보다 더 악화할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부채 할인율(시장금리)을 어떻게 산정하느냐에 따라 추산액이 크게 바뀔 수 있다”며 “할인율 전망을 더 낮게 보수적으로 하면 보험사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보험업계 제도변화 대응은 ‘미적’

보험업계에 먹구름이 몰려오는데도 국내 보험사들은 여전히 대응을 미적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 보험사들을 상대로 IFRS4 2단계 대응 현황을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일부 대형사를 제외하고는 대응 태스크포스(TF)조차 제대로 꾸리지 않는 등 준비가 미흡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이 전 보험사로부터 향후 대응계획을 제출받는 등 제도 변화에 따른 대응책 마련을 독려하는 모습이다.

금융당국도 보험사들의 자본확충 및 건전성 강화를 유도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중이다.

최근 개정된 보험업법 시행령에 보험사의 후순위채 및 신종자본증권 발행 기준을 완화하고 지급여력비율(RBC) 산정 기준을 강화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인수·합병 시장에서 국내 보험사들을 역차별하는 요인으로 지목받는 보험사 투자한도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보험업계의 위기의식이 커진 가운데 과거 고금리 시절 금리확정형 장기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명보험사들일수록 위기의식이 크다. 생보사 보험료 적립금 중 확정금리 연 7% 이상을 적용해야 하는 규모는 무려 92조 4000억원에 달한다. 손해보험사는 금리확정형 상품 비중이 7.6%로 낮은 반면에 생보사는 이 비중이 44.3%로 높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장 10년 전에 집중적으로 판매했던 고금리 저축성 보험이 조금씩 만기가 돌아오는 만큼 곧 회계상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몇 년 사이에 망하는 보험사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법적으로 보험사가 망하면 해당 계약을 다른 보험사에서 인수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 보험업계 전체가 휘청거리는 상황도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nallee-babo@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