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꿈꾸기에 늦은 땐 없다! 한국인 최초 프랑스 미슐랭 '별' 획득한 늦깍이 이영훈 셰프

전경진 기자
입력일 2016-02-24 07:00 수정일 2016-02-25 13:24 발행일 2016-02-2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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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 "멸치육수 + 푸아그라 = 파리지엥 입맛 매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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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셰프와 레스토랑 직원들 (사진제공=이영훈 셰프)

“여기 비빔밥 없어요?”

프랑스 리옹 사람들은 레스토랑 ‘르 파스 탕’(Le Passe Temps·기분전환)을 방문해 한국음식을 찾곤 했다. 단체로 와선 초밥을 찾거나 중국식당 아니었냐고 어리둥절해 하기도 한다.

콧대 높은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이같은 동양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이영훈(33) 셰프는 프랑스에서 한국인 최초 미슐랭 1스타를 획득했다. 미슐랭 스타 셰프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최대 3개)을 획득한 요리사를 지칭한다.

지난 5일 발간된 ‘2016 미슐랭 가이드 프랑스판’은 “서울에서 태어난 이영훈은 프랑스 요리에 한국인의 감각을 입혀 새롭게 해석했다”고 평했다. 그의 대표 요리인 멸치육수와 푸아그라(Foie gras·거위 간) 조합에에 대해선 “굉장히 맛있다”는 찬사를 보냈다.

“식재료와 간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완두콩이나 토마토, 아스파라거스 등은 수입산도 많지만 주변에서 금방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 위주로 사용하고 있어요. (음식을) 접시에 담아 내가기 직전엔 꼭 천일염을 한번씩 뿌리죠.”

레스토랑 르 파스 탕을 개업한 지 2년. 이젠 누구도 이 레스토랑에서 ‘뭘 파느냐’고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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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셰프가 만든 요리들 (사진제공=이영훈 셰프)

“프랑스 현지에서 프랑스인들에게 프랑스 요리로 꼭 인정받고 싶었어요.”

미슐랭 1스타 셰프 선정 소식을 접했던 순간을 그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그의 꿈이 처음부터 셰프는 아니었다. 라면 말고는 집에서 요리를 해본 적도 없었다.

“(한국에서) 원하던 대학 진학을 2번이나 실패하고 ‘뭘 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그런 그가 프랑스 요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군 전역 후 3년간 일했던 서울의 한 프랑스 레스토랑에서였다. 이후 그는 유학 길에 올라 프랑스에서 언어부터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다. 폴보퀴즈 요리 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며 레스토랑 인턴 생활도 했다. 프랑스 유학길에 오르면서 레스토랑을 창업하기까지 쉬운 일이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레스토랑 창업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는 일이었어요.”

소위 ‘금수저’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수중에 큰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동양인이 제시한 ‘프렌치 레스토랑 창업 계획서’를 보고 선뜻 돈을 빌려주는 프랑스 은행도 없었다. 은행에선 “왜 우리가 너 같은 외국인에게 돈을 빌려줘야 하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몇 개월을 돌아다닌 끝에야 한 은행에서 겨우 소자본을 얻을 수 있었다.

“대출 받은 돈이 너무 적어서 식당 공사는 직원들과 지인들이 힘을 합쳐 했어요. 홀엔 데커레이션 하나 없이 겨우 전구 몇개 달아놓고 식당을 오픈했죠. 그때 같이 고생했던 직원들과 아내가 너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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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셰프와 아내 임소영씨(사진제공=이영훈 셰프)

아내 임소영(33)씨는 프랑스 유학 초기부터 온갖 고생을 함께 해왔다. 프랑스에 처음 도착해 2년 간은 아내 소영씨가 한국 직장을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으로 생활했다. 그 퇴직금을 다 쓴 후엔 소영씨가 일식집에서 일하며 부부의 생활비를 벌었다.

“제 아내가 없었으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을 겁니다. 보통 사장 부인이면 사모님이라고 하잖아요. 그동안 그런 대우 한번 못 받게 해줘서 미안해요.”

소영씨 역시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서 와인을 공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편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 소영씨는 “지금은 신랑이 만든 음식을 서빙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때론 사람들이 신랑 음식을 먹는 모습을 (너무 좋아서) 한없이 지켜보곤 한다”고 말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씀 드리면 깨있는 시간은 계속 새 메뉴를 생각해요. 어떤 재료가 눈에 들어오면 머리 속에서 그 재료를 이렇게 넣어보고 조리하고 다른 걸 조합도 해보고….”

스타 셰프가 됐어도 그는 변함없이 온통 요리 생각뿐이다. ‘쿡방’ 열풍과 관련해 출연 의사를 묻자 앞으로도 계속 요리에만 전념할 생각이란다.

“프랑스에서도 제안을 받았지만 제가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 없이 레스토랑이 돌아가게 놔두는 게 싫어요. 가끔 제가 주방에 없을 때도 있어요. 그 날은 저희 레스토랑이 영업을 하지 않는 날이죠. 저는 쭉 주방에 머물겁니다. ”

남들보다 한참 늦은 나이에 요리에 입문해 프랑스 현지에서 인정 받은 이 ‘늦깎이 셰프’는 한국의 셰프 지망생들에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닐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꿈 꾸기에 늦은 때는 없음을 일깨운다.

“꿈꾸는 게 있다면 조급해 하지 마시고 현재 주어진 매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세요. 그러다 보면 분명 본인이 생각하는 꿈, 목표 앞에 와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전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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