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검은 돈' 110조원 관리… 사상 최대 '글로벌 금융 스캔들' 파문 확산

김효진 기자
입력일 2015-02-10 15:20 수정일 2015-02-10 18:26 발행일 2015-02-1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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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 노하우 알려주고 고국서 현금 합법인출 서비스까지

세계에서 사실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은행인 HSBC의 스위스 제네바 지점이 전 세계 부자들의 탈세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국제 사회가 들끓고 있다. 

HSBC는 불법 무기 거래상, 마약 밀매업자, 피 묻은 다이아몬드 거래상 등의 출처가 불분명한 ‘검은 돈’을 숨기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 영국 가디언, 미국 CNN 등 주요 외신은 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소재 HSBC 은행의 PB(개인자산관리)사업부가 비밀 계좌를 개설해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어온 것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밝혔다”며 “은행 역사상 최악의 행태가 포함된 문서 유출”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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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고객들이 HSBC 런던 지점 현금 자동 입출금기를 이용하고 있다. (EPA=연합)

보도에 따르면 HSBC PB사업부는 203개국의 개인과 법인 명의로 개설된 10만여개의 계좌를 통해 1000억 달러(약 109조 5000억원)에 이르는 자산을 관리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HSBC는 고객이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맡기면 본국에서 신용카드를 통해 합법적으로 돈을 인출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ICIJ는 전 세계적으로 7조6000억 달러(약 8284조 700억원)의 돈이 세금을 피해 해외 조세도피지에 숨어 있어 각국 정부가 한 해 2000억 달러(약 220조원)의 세금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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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었나

영국 BBC에 따르면 2007년 당시 HSBC 스위스 제네바 지점 PB 사업부에서 IT 전문가로 근무한 에르베 팔치아니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데이터 CD 5장을 갖고 나왔다. 스위스 비밀 계좌를 소유한 전 세계 200여개국 10만여 명의 고객 정보를 담아 온 것이다. 당시 팔치아니는 프랑스 정부에 자료를 전달했다.

2010년 초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탈세 혐의자들을 수록한 비밀 리스트를 작성하기도 했다. 최근 프랑스 르몽드, 영국 BBC파노라마와 가디언 등 140여명의 언론인 회원들과 ICIJ는 문서를 심층 분석한 내용을 공개했다.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

현재 밝혀진 은행의 고객들은 일부 국가의 왕실 인사, 기업체 중역, 마약 밀매상, 러시아 백만장자 등이 포함돼 있다. 리펑 전 중국 총리의 딸인 리샤오린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과 남편도 불법 계좌 개설을 통해 245만 달러(약 26억7000만원)를 숨겨온 것으로 나타났다.

모하메드 라치드 전 이집트 통상장관, 아이티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의 측근인 프란츠 메르세론, 러시아 재벌 겐나디 팀첸코 등도 조세 당국의 감시를 피해왔다.

ICIJ는 “HSBC가 제3세계 독재자들의 자금 운반책, 국제 범법자들 등과 거래해 이득을 취했다”고 비난했다.

특히 HSBC는 2005년 유럽에서 스위스 소재 은행들이 보관 중인 세금 부과 대상 자산에 대해 은행이 강제로 세금을 추징해 세무 당국에 대납하게 하는 조치가 시행되자 고객들에게 탈루 방법을 조언하기도 했다.

국가별 계좌 보유금액은 스위스가 312억 달러(약 24조원)로 1위였다. 영국, 베네수엘라, 미국, 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고객 수 또한 스위스가 1위였으며 프랑스, 영국, 브라질이 뒤를 이었다. 한국은 조사대상 203개국 가운데 140위를 차지했다. 20개 계좌에 2130만 달러(약 232억원)를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왜 문제가 되나

이미 지난 2010년 프랑스 정부는 내부 고발자에게 받은 문건을 계좌와 관련된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 정부의 조세 당국에 전달했다.

HSBC는 이와 관련 2012년 미국 당국으로부터 벌금을 부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SBC가 여전히 불법적인 방식으로 고객의 탈세 혐의에 일조한 것에 대해 국제 사회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가디언은 “HSBC 내부에서 고객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세금을 피하는 방법까지 알려줬다”고 비판했다.

영국 하원 공공회계위원회의 마거릿 호지 위원장은 “탈세 혐의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데는 분명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을 것”이라며 “HSBC의 스티븐 그린 회장에게 탈세 계좌에 관한 직무 유기나 고의 방조 의혹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효진 기자 bridgejin100@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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