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민족주의에 가려진 필즈상의 의미

이정아 기자
입력일 2022-07-10 10:56 수정일 2022-07-10 11:01 발행일 2022-07-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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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이정아 기자

“앞으로 한국 수학 발전을 위해 제가 할 역할이 더 커진 듯해서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행복하고 기쁩니다”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상한 한국계 미국인 허준이(39·June Huh) 프린스턴대 교수 겸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지난 8일 한국으로 입국한 뒤 밝힌 소감이다.

1936년 제정된 필즈상은 수학계에 중요한 공헌을 한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지금 껏 한국인은 물론 한국계가 이 상을 수상한 전력은 없다. 그렇기에 허 교수의 수상을 두고 대한민국이 들썩이는 건 당연하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대한민국에서 공부한 젊은 수학자의 수상이라 감격이 더하다”는 축전을 보냈다.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허 교수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허 교수는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유지하던 중 병역문제로 인해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따라서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 또한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의 실적으로 기록된다.

또 허 교수의 수학적 성취는 대한민국이 아닌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그는 대한민국 공교육 체제에서 흔히 말하는 ‘수학 영재’가 아니었다. 수학에 흥미는 있었지만 입시와 연계된 수리는 관심 분야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땐 시인이 되고자 학교를 자퇴하기도 했다. 이후 허 교수는 과학 기자를 꿈꾸며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했고, 학부 마지막 학기에 세계적 수학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를 만나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필즈상 수상’이라는 명제는 한국에서만 이뤄지는 자화자찬이다. 허 교수 개인의 성과를 ‘한국계’로 덮어버리는 민족주의적인 사고는 오히려 우리나라 수학 발전에 해가 되는 행위다.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에 대한 깊은 고찰과 반성이 없는 한 앞으로도 한국인의 필즈상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치경제부 이정아 기자 hellofeliz@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