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명분 없는 보유세 U턴

문경란 기자
입력일 2022-03-24 14:08 수정일 2022-04-27 14:55 발행일 2022-03-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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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란 건설부동산부 기자

국어사전에서 ‘명분(名分)’의 뜻을 찾아보면, ‘일을 꾀할 때 내세우는 구실이나 이유 따위’를 뜻한다. 2020년 정부는 ‘공평 과세’를 명분으로 공시가를 시세와 맞추는 ‘공시가 현실화’를 추진했다. 2030년까지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로 올린다는 게 애초 정부의 목표였다. 하지만 2년 만에 명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정책은 갑자기 유턴하게 됐다.

정부는 23일 ‘2022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을 발표하며 공시가격 급등으로 보유세 폭탄이 우려된다며 1세대 1주택자에 한해 작년 수준으로 세 부담을 낮춰주기로 했다. 하지만 다주택자의 경우 이번 방안에서 배제되며 평균 17.22% 오른 올해 공시가격을 그대로 적용한다. 같은 아파트라도 1주택자가 보유할 때와 2주택자가 보유할 때 기준 가격이 다른 기현상이 발생하게 되면서 조세 형평성과 정책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주택자의 경우도 반응이 싸늘하긴 마찬가지다. 보유세 동결이 올해 한정된 조치인 만큼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내년에는 올해 공시가 상승분까지 더해져 1주택자라도 보유세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당연히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보유세에 대한 불만이 지난 대통령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고,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둘러 정책을 전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번 내놓은 방안이 폭발 직전의 부동산 민심을 달래기 위한 땜질식 처방인 만큼 새 정부에선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전면 재검토’와 같은 근본적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디 새 정부에선 정치적 셈법에 따라 땜질되는 세제가 아닌, 조세 원칙에 맞는 합리적 부동산 세제가 반영구적으로 자리 잡길 기대해본다.

문경란 건설부동산부 기자 mgr@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