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울어진 운동장 그리고 사후약방문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22-03-10 14:29 수정일 2022-03-10 17:50 발행일 2022-03-11 19면
인쇄아이콘
ksh_120-150
김수환 금융증권부 차장

“물적분할 당시 모회사 일반주주와 자회사 상장 당시 모회사 일반주주 구성은 동일하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하며 물적분할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금융위 관계자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기까지 2~3년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투자자들이 (모회사) 주식을 매도할 수 있어 상장 당시엔 주주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이라는 팩트를 말한 것”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팩트보다 중요한 진실은 물적분할 후 2~3년이 되기 전에 일반주주들이 이미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투자자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정의정 대표는 “2~3년이 문제가 아니라 물적분할한다고 발표하면 모회사 주가가 폭락하고, 물적분할이 끝나기 전에 이미 주가는 하락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이번 가이드라인은 기업들이 물적분할 등 소유구조 변화시 소액주주의 보호 방안을 스스로 강구하도록 권고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지배주주에게 이롭지만 일반주주 가치는 훼손되는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문제를 방치해왔다는 지적을 받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은 기업이 반드시 지키도록 강제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는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문제에서 ‘불가피하다’는 기업 측 입장과 ‘피해가 가중된다’는 소액주주 입장 양쪽의 균형점을 찾고자 했겠지만, 이 문제는 주식시장의 한 ‘기울어진 운동장’ 사례이고 일반주주들의 피해가 지속돼 왔던 만큼 새 정부에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김수환 금융증권부 차장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