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다려도 좋으니 개봉을 부탁해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22-02-23 14:21 수정일 2022-02-23 15:38 발행일 2022-02-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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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 문화부 차장

지금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지만 과거 영화의 개봉일은 금요일이 불문율이었다. 주말 전에 오프닝 스코어를 올려 주말 상영관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암묵적 꼼수였다. 지금은 전야개봉도 흔하고 북미보다 먼저 개봉하는 외화도 많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년차가 되면서 ‘지각개봉’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2일 발표한 ‘2021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2021년 한국 영화산업 주요 부문(극장, 극장 외, 해외 수출) 매출 총합은 1조 239억원으로 전년 대비 2.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장 규모만 따진다면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의 40.8% 수준이다. 영화산업 시장 규모는 2019년 2조 5093억원에서 2020년 1조 537억원, 2021년 1조 239억원으로 2년 연속 내림세다.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은 전년 대비 37.9%p 감소한 30.1%로 11년 만에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는데, 이는 1999년 이후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로는 최저치다.
영화계가 부침을 겪으며 제작이 연기되고 무산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업계 관계자들의 한숨은 늘어만 간다. 최근 언론배급 시사회를 연 최민식 주연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크랭크 업 3년만에 극장에 걸린다. 충무로에서 인정받은 웰메이드 작품이라는 입소문과 쇼박스라는 굴지의 투자배급사가 붙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가진 연기력과 티켓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개봉시기를 가늠해 극중 달력이 나오는 상황의 경우 적어도 1, 2년 뒤를 게시하는 게 정설이었는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는 2019년 달력이 등장할 정도. 
긴 제작기간을 불운보다 발돋움으로 딛는 영화도 있다. 9년의 기다림 끝에 개봉하는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동시기 개봉작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흥행 청신호를 밝혔다. 일찍이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695만 관객 흥행 기록을 달성했던 장철수 감독의 파격 신작으로 연우진과 지안의 연기변신이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올해 첫 한국 영화 흥행작인 ‘해적: 도깨비 깃발’(이하 해적2)과 전세계를 사로잡은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을 탄생시킨 천성일 작가는 “좋은 시기 다 놔두고 어려운 시기에 동시에 내놓은 게 괜스레 미안하다”는 말로 복잡한 심경을 표했다. 본의 아니게 두 작품 모두 비슷한 시기에 집필이 끝났다는 그는 ‘브릿지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둘 다 똑같은 자식인데 수능을 망친 아이에게 마음이 가는 부모의 심정을 절감하고 있다”며 코로나19 확진자가 느는 상황에서 극장 관람을 권해야 하는 배우들의 속마음을 전했다.
어쨌거나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비로소 제 몫을 다한 느낌이다. 바로 OTT로 직행하는 작품도 점차 늘고 그것이 흠도 아닌 세상이다. 단 며칠이라도 극장에 걸린 영화를 보는 것, 그것이 관객도 관객의 기쁨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다.
이희승 문화부 차장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