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직도 ‘설강화’가 민주화 운동을 폄훼했다고 생각하나요?

조은별 기자
입력일 2022-01-16 15:09 수정일 2022-01-17 11:15 발행일 2022-01-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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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별 문화부 차장

민주화 폄훼 논란을 빚었던 JTBC 드라마 ‘설강화’가 중반을 넘어섰다.

1회 방송 뒤 “근거 없이 간첩을 몰려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운동권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간첩이 민주화 운동을 이끌고 안기부를 미화하는 드라마 내용이 불편하다”며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는 등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10회에 도달하기까지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다.

드라마는 1987년 대선을 앞두고 군부정권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남북대선합작공작’을 도모한 가운데 서울의 한 여대에서 간첩이 인질극을 벌이는 내용이 주요 얼개다.

극 중 안기부와 정권 실세들은 무능하면서 비열하게 묘사됐고 간첩 역시 대체로 인정사정없는 인물들로 그려졌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인 남파간첩 임수호(정해인)와 안기부 직원인 이강무(장승조)가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손을 잡는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것처럼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내용은 없었다.

본보는 ‘설강화’ 1회 방송 뒤 보충 취재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지도 않고 재단하는 대중과 그에 동조한 일부 정치인,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대다수 매체들은 ‘설강화’를 민주화 폄훼 드라마로 낙인찍었다. 드라마의 OST를 부른 가수는 드라마를 옹호했다가 뭇매를 맞았고 한국학을 연구하는 일부 국내외 지식인들이 드라마가 역사왜곡 우려를 자아낸다며 방영권을 구매한 글로벌 OTT 디즈니 플러스에 서한을 보내기까지 했다. 과연 무엇이 국제적 망신일까.

1987년 대선을 앞둔 ‘설강화’에서는 안기부와 정권이 진실을 보도하는 취재진의 입을 막는 장면이 전파를 탄다.

대선을 앞두고 시청자 주권을 앞세운 검열이 콘텐츠의 진의를 왜곡하고 나아가 상영금지 압박을 하는 2022년의 모습이 드라마 속 상황과 묘한 동질감을 일으킨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