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 발목 잡는게 규제인가 타성인가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21-12-13 14:34 수정일 2021-12-13 14:35 발행일 2021-12-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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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금융증권부 차장

인도에서 코끼리를 길들일 때 조련사들은 어린 코끼리를 잡아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두꺼운 말뚝을 박아 놓는다. 힘이 부족한 어린 코끼리는 말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코끼리는 거대한 어른 코끼리가 되어서도 말뚝을 벗어나지 못한다.

국내 대형은행들이 성과를 자랑하는 ‘원앱’(One App)의 탄생 과정을 들여다보면 인도코끼리가 떠오른다. 은행들은 빅테크에 대응해 증권, 보험, 카드 등 계열사들의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대표 앱을 준비해왔지만 아직 제한적인 서비스만 가능하다. 현재의 수준에 도달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문제는 그 다음 단계에 대한 개념을 아직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규제를 원흉으로 지목하는데 금융사의 디지털 전환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의 관계자는 “은행들이 현재 하는 수준에서는 규제의 문제가 없다”며 “추가적으로 어떤 것을 시도할지 물어보면 아직 답을 못하는데 은행들이 서비스 범위를 결정하고 나면 그 다음에 무엇이 규제에 저촉되는지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규제의 가이드라인이 정해지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에서 어떤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규제에 오랫동안 묶여 있다 보니 아이디어도, 계획도 규제를 뒤따르게 된 것인가.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은행들의 디지털 혁신은 이제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은행들의 디지털 전환이 더딘 이유가 과연 규제(말뚝)가 전부일까. 타성에 젖어있거나 금융그룹내 계열사별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은 아닌지 따져봐야겠다.

김수환 금융증권부 차장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