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윤여정에게 어른의 품격을 배우다!

이희승 기자
입력일 2021-11-28 14:42 수정일 2022-02-25 10:44 발행일 2021-11-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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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 문화부 기자

지난주 열린 한 영화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오프닝 멘트가 화제다.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은 그는 약 6개월간의 긴 레이스를 이어온 상태였다. 영화 ‘미나리’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한국인 할머니 역할을 맡았을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사람을 보고 일할 나이가 됐다. 비중은 적지만 감독이 보내온 시나리오를 읽고는 마음이 움직였다. 직접 만나본 감독에 대한 호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고.

전작인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출연도 비슷했다. 당시 신인 감독과 윤여정을 제외하고는 유명세가 크지 않은 배우들의 출연으로 언론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취재진은 극도로 적었다. 당시 윤여정은 “내 나이에 돈 보고 출연하지 않는 것도 복인 것 같다. 김초희 감독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다”며 이제 막 장편을 내놓은 여성 감독의 이름에 날개를 달아줬다. 꼰대, 영감 등 이 시대 ‘어른’들을 비하하는 분위기 속에서 윤여정이 보여주는 품격은 늘 이런 식이었다.

본론으로 돌아와 윤여정이 2부의 시상식에 등장하자 객석에 앉아있던 선후배 영화인들이 기립박수로 그를 반겼다. 오스카 시상식 직후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와 오랜 피로감을 호소하며 기자회견 조차 열지 않았던 윤여정이었기에 반가움이 더했다.

윤여정은 “몇주전에 영국 가디언지와 인터뷰를 했는데 ‘한국 대중예술이 갑자기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를 알 수 있느냐고’ 그래서 제가 대답했다. 우리는 언제나 늘 좋은 영화, 드라마가 있었다. 단지 세계가 지금 우리에게 갑자기 주목할 뿐이라고 했다”고 했다. 이어 객석에 앉은 배우와 제작진을 향해 “제 말에 책임지게 해주셔야 한다. 다 같이 바라볼 게 많은 여러분이 좋은, 많은 얘기를 만들어서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게 제 바람”이라는 덕담을 건넸다.

비단 영화인뿐이 아니라 같은 한국인이라면 긍지를 느낄 만한 인생선배로서의 조언이었다. 그렇게 청룡에서 윤여정은 오롯이 빛났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