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폴레옹의 석류와 고승범의 플랜B

김수환 기자
입력일 2021-11-03 14:09 수정일 2021-11-03 15:02 발행일 2021-11-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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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금융증권부 차장

“저 고개를 넘으면 석류나무가 있다.”

알프스산맥을 넘느라 지칠대로 지쳐 있는 병사들에게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하며 행군을 독려했다. 병사들은 그 말에 남은 힘을 쥐어짜며 산을 넘었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정상 너머에 석류는 없었다. 병사들은 입 속에 고인 침으로 갈증을 해소했고 나폴레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서슬 퍼런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 등 금융권은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다. 알프스산맥과도 같은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인지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0·26 대책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될 경우 전세대출 원금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적용하는 등 더욱 강화된 규제를 도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른바 ‘플랜B’다.

그러나 금융권의 한 중견 인사는 “플랜B는 립서비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 내놓은 고민의 산물이지만 실수요자가 연결된 전세대출까지 조이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국은 왜 ‘플랜B’를 거론했을까. 이에 대해 이 인사는 “시장에 더 센 카드가 있다고 시그널을 주는 것”이라며 “이것저것 풀어준 지금의 대책이 마지막 대책이라고 하면 시장이 웃지 않겠나”라고 했다.

선거 정국이라는 상황은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또 다른 금융권 인사는 “선거 정국에선 다 표로 연결되고 여기저기서 죽는다는 소리 나오는데 현 정부 임기 말년에 국민들에게 욕먹을 일은 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터지지 않는 가계부채 폭탄과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대선. 그 앞에서 고 위원장의 고심이 담긴 ‘플랜B’는 결국 금융권이 자발적으로 대출을 줄이게 하려는 나폴레옹의 석류와 같은 것일까.

김수환 금융증권부 차장 ksh@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