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도체 위기 대응할 컨트롤타워 시급

우주성 기자
입력일 2021-11-01 08:32 수정일 2021-11-01 18:00 발행일 2021-11-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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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성 산업IT부 기자

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요구한 정보 제출 시한이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도 이달 8일까지 미국 정부에 주요 고객사와 고객별 주문량, 3년간의 판매실적, 제품 재고, 출하 비율 등의 민감한 경영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 고객사 정보의 유출은 그 가능성만으로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은 제출 수위를 두고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지만, 상대가 미 정부라는 점에서 별 뾰족한 대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냉전시기에 만들어진 국방물자생산법(DPA)마저 발동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정부 역시 지난달 18일 ‘대외 경제안보 전략회의’ 등을 소집한 데 이어, 같은 달 25일 제러미 펠터 미 상무부 차관보에 국내 기업들의 우려를 다시 한 번 전달했다. 그럼에도 아직 자료제출 범위 변경 등에 대한 확답은 얻어내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표면상 기업에게 ‘자율적’으로 정보를 요구한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쉽게 대응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미간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업계에서는 다소 미온적인 정부의 대응이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대응 속도에서 더욱 그렇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정보를 요구한 지 일주일 만인 9월 30일, 쿵밍신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 장관은 반도체 기업의 고객 정보 제공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달 초 대만 경제부 역시 TSMC 등 자국 반도체 업체의 영업 정보를 고객 동의 없이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적인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효과적인 대응 방식이나 속도에 영향을 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 5월 발표한 ‘K-반도체 전략’을 비롯, 각종의 반도체 지원 사업을 국책으로 지원 중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위기 상황을 위한 매뉴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 반도체는 경제 문제를 넘어 국가 간 안보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미국의 이번 요구 역시 공급망 확보와 더불어, 반도체를 국가 안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 자국화로 미국뿐만 아니라 향후 언제 어디에서든지 이런 문제가 재현될 개연성도 충분하다.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시스템이다. 향후 민·관이 주도할 수 있는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이 필요한 때다.

우주성 산업IT부 기자 wjsbur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