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탄소 중립이 '스크랩 전쟁'으로…철강 중기 새우 등 터진다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1-10-31 15:11 수정일 2022-05-11 23:03 발행일 2021-11-0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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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스크랩 구매 경쟁 촉발…원가 상승·생산량 저감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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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산업IT부 기자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 최종 의결로 철강 업계의 고민이 한층 깊어졌다. 특히 부심을 끌어내는 부분은 철 스크랩 전기로 조강을 확대해 탄소 배출량의 95%를 감축하자는 내용이다. 철 스크랩을 사용하는 전기로의 탄소 배출량은 석탄과 철광석을 이용하는 고로의 4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크랩은 주철 폐품에서만 얻을 수 있는 ‘발생재’다. 안 그래도 제한적인 자원을 두고 더 치열하게 다퉈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스크랩 시장은 이미 급물살을 탄 모습이다. 양대 고로 철강사가 공격적으로 스크랩을 사들이기 시작한 영향이다.

포스코는 지난 6월 스크랩 사용 비율을 15%에서 18~19% 수준으로 상향했다. 연간 쇳물 생산 규모를 4000만t으로 산정하면, 스크랩 사용량은 80만~120만t 늘어나는 셈이다. 오는 2025년까지는 30%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또 최근 구매가를 올리는 등 적극적인 구매 기조를 보여 주고 있다. 현대제철 역시 당진제철소 파업과 보수를 끝내고 스크랩 구매를 확대하고 있는 참이다.

여기에 세계 1위 철강 생산국인 중국과 일본 등까지 스크랩 확보전에 참전했으며, 각국이 스크랩 수출 빗장을 걸어 잠그는 추세다.

중견·중소 기업들은 고래 싸움 속 새우가 됐다. 원가 상승과 이로 이한 생산량 저감의 이중고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내 스크랩 자급률은 85% 수준으로, 국제 가격 변동에 취약하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외 구매 경쟁이 스크랩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전망이다.

실제로 스크랩 가격은 13년래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올해 변동 폭은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때와 유사하다. 당시에는 t당 가격이 67만원에서 반년 만에 16만원까지 폭락했지만, 13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지난해 6월에만 해도 28만원이었던 가격이 이달 56만8000원까지 급등했다. 업계는 이 같은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며, 60만원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탄소 중립이 가야할 길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시장 혼란 야기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전략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아무리 이상적이라 한들 현실과 동떨어지는 정책은 곧잘 좌절되곤 했다. 명분과 실리 모두 챙기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박민규 기자 minq@viva100.com